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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8




3:10 pm[잔여19석:식사마감]

Yol,1982

이츠카T,아이셔T(2),신두영(4/D),주미령(4/D),오영이T,한경민(2/D),김희윤(2/ND)





일마즈 귀니,Yilmaz Güney+세리프 고렌,Serif Gören 감독

Tarik Akan ....  Seyit Ali
Serif Sezer ....  Ziné
Halil Ergün ....  Mehmet Salih
Meral Orhonsay ....  Emine
Necmettin Çobanoglu ....  Omer
Semra Uçar ....  Gulbahar

1:34:1 letter box Version/color/2.1 모노/111분
"1982'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심사위원대상,통합 비평상 석권
1983' French Syndicate of Cinema Critics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수상
1983' Golden Globes, USA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후보
1984' London Critics Circle Film Awards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수상"

언어/Turkey+Switzerland+France
자막/한국
번역/DRFA,조한우



"조나단 유, 내인생의 영화 14위, 율법에 빠진 인간들을 신랄하게 꾸짖다!"




<여호와 증인>이나 <제7안식일교회> 그리고

<몰몬교>,일부 <장로교회>,<감리교회>,<신천지> 할 것없이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율법을 지킴으로써 자신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
잘못 배운 신학의 영향이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1장에서 우리 이방인들은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할 수 없으니 교만을 버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천국의 바겐세일에 초대받은 곁가지들 답게

이 세상에서 한없은 자유를 누리다 오라고 말하죠.

다만 그 자유로 죄의 종노릇하는 데 사용하지 말기를 당부하죠.

하지만 이슬람이 깊이 파고든 나라에서는 사도 바울의 이 말은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는 기름과 물이죠.

끝까지 율법을 지킴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스스로 세뇌해버리는 거죠.

비극은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곁가지 이방인 중에서도 특히 터키는 선민사상이 지독히 강한 나라입니다.

터키인들이 세상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고 믿는데는 노아의 방주가 한몫을 하죠.

대홍수 이후 방주가 아라랏山에 정착되고 비로소

세계의 인종이 터키를 시작으로 전파되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타민족을 깔보고 무시하는 국수주에 절인 민족들이

유일하게 미치도록 짝사랑하는 나라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한국입니다.

지금도 터키를 여행하면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조상과 우리의 조상이 원래 하나였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분에 넘치는 환대를 많이 보여주는데,

이것이 순 억지만은 아니죠.

터키와 우리는 우랄 알타이어계에 속하는 샘족이죠.

(인류가 노아의 세 명의 아들, 샘족과 야벳족,

그리고 함족으로 분류되는 것도 터키인들의 선민사상을 부추키는 대목이다)

놀라운 사실은 터키의 언어와 우리의 순수어가 너무도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터키어로 뭔줄 아시나요?

후후.... "에미"입니다.

김수현의 피비린내 나는 컬트 시나리오 제목이 아마도 <에미>이죠.

그리고 아버지를 그들은 "아바"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김서방"네" 하는 "네"까지도 꼭 같습니다.

예를 들면 지난 월드컵에서 터키 골 수훈의 장병이었던 일한네 하면 그것은 곧 일한댁과 같은 의미입니다.

박수무당을 '박시'라고 하는가 하면 풍습 또한 무척 많이 비슷합니다.

우리의 선비제도가 있었던 유일한 나라가 지구상에서 터키라고 하네요.

굶어 죽어도 선비는 부자간의 신의와 군신의 덕목을 지켜야한다는 선비정신이 터키에도 그대로 있었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터키는 한국전이 발발했을 때 대규모의 전투병을 파견하였고,

그리고 가장 많은 전사병을 낸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비해 우리가 그들에게 돌려준 것은

한때 <터키탕>이라는 좀 지저분한 성적 커미셜의 잔여물들 뿐임이 민망한 것도 사실입니다.

모든 인류가 하나라는 슬로건이 만연한 이 때에

굳이 이렇게 처연한 뿌리찾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 만은

터키는 우리와 밀접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불행하게도 좌익을 경멸하고, 좌익에 대해 철저히 응징하는 군사정신 또한 우리와 닮은 것이 터키인데

1982년 별 희한한 일이 세계영화사에 발발했더랬죠.

미국에서는 스필버그의 ET가 사상 최고의 흥행 수익을 올리고,

잉마르 베르히만이 은퇴를 선언하고,

파스빈더가 사망하던 격동의 1982년 칸느영화제에서

심사위원들의 뒷골이 뽀개질 영화 한 편이 스크리닝되는데,

그것은 바로 터키의 좌익 감독 알마즈 귀니의 <욜>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의 절대권력이 한국을 접수했을 때

터키는 육군 참모총장 케난 에브렌이 무혈 쿠데타로

술레이만 데미렐 총리의 정의당 정부를 전복시키고 정권을 장악하죠.

일마즈 귀니는 곧장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서적을 발간하였고,

데모하다 쫒겨다니는 학생들을 숨겨주었다고 합니다.

일마즈 귀니는 이미 60년대 초 한참 배우로써 명성을 날리기 시작하던 때에

한 판사의 살해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10년 형을 언도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첫번째 감옥행에서 배우생활의 시작을 망쳐버린 그는

70년대 초 감독의 꿈을 펼칠 무렵,

그의 영화가 불온하다는 이유로 또 다시 감옥으로 가게 되죠.

18년 형을 언도받은 세번째 감옥행은 일마즈 귀니로 하여금

독한 마음을 갖게 하였는데

그것은 감옥 속에서 영화를 만들겠다는 독특한 영감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 <욜>이 시작할 때 a film by 일마즈 귀니라고 시작하면서

이윽고 directed by는 세리프 괴렌이라는 이름으로 뜨는데

칸느의 심사위원들은 이 대목부터 좀 멍해지죠.

다름 아니라 일마즈 귀니가 감옥 속에서 자신의 조감독 세리프 괴렌에게

영화의 콘티를 넘겨주며 그대로 찍어오라고 지시하고,

그는 이렇게 찍어온 네거 필름을 들고 감옥을 탈출합니다.

스위스로 도망간 일마즈 귀니는 이 필름들을 편집해서 82년 칸느에 출품하였고,

그해 칸느는 작품의 질과 품격에 관계없이

이 영화에 그랑프리를 줌으로서 그간 일마즈 귀니의 노고에 치하합니다.

하지만 황금종려상 트로피가 일마즈 귀니의 손에 쥐여지기도 전에

터키 정부는 일마즈를 칸느 현장에서 체포했으며,

터키로 송환된 일마즈 귀니는 온갖 고문과 탄압 속에서 신음하다

2년 뒤에 47살의 나이에 쓸쓸한 생을 마감합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었음을 후회한다"고 분명히 밝힌적이 있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끊임없는 시험과, 사랑의 확인,

그리고 실패와 참회의 순환은 역사 이래로 줄기차게 되풀이 되어왔지만,

<욜>을 보면 80년대 군사정권 아래서의 터키인의 삶은

절로 "오, 신이시여~" 라는 탄성이 나오게 만듭니다.

물론 터키 정부가 이 영화에 대해 방방 뜬 것은 텍스트의 오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 <욜>은 군사정권의 독재로 신음하는 인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슬람권이 흔히 저지르는 억지적 율법의 자가해석의 오류를

냉엄한 시선으로 꾸짖는 영화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5일간의 가석방 출옥을 받은 5명의 죄수들을를 추적하는 카메라는

그들이 할양받은 5일이란 시간의 자유를 통해,

인간의 자유라는 것이 긍휼과 용서의 정신 없이는

결국은 감옥 속에 갖힌 썩은 정신과 다름없다는 무서운 진리를 감독은 설파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터키 정부는 이 영화를 오해한 것입니다.

욜은 피비린내나는 터키의 현실을 고발한 것이 아니라,

구약의 모든 율법을 깨트린 예수의 자기희생의 메시지를 망각한

터키인들의 조형된 삶에 차가운 메스를 들이댄 것입니다.

예레미야와도 같은 한 선지자의 쓸쓸한 외침인 이 영화를

터키 당국은 좌파 영화로 착각했고,

신약의 선지자 일마즈 귀즈는 모든 선지자의 최후처럼 차가운 죽음을 맞이한 것이죠.

주어진 5일간의 시간 속에서 주인공 세이트 알리는

오로지 자신을 기다리지 못하고 배가 고파 외간 남자에게 몸을 판 아내를

직접 처단하기 위해 수백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생콕이라는 산속 마을로 여정을 떠납니다.

그곳에서 8개월간 가족들에 의해 발에 족쇄를 채인 채

짐승처럼 신음하고 있는 아내를 끌고 세이트 알리는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쇠약해진 아내는 남편을 따라가지 못하고 눈 속에서 절규하죠.

"제발 자신을 긍휼하게 여겨달라"고 아내는 외치지만

남편은 이러한 아내의 절규를 외면합니다.

결국 차갑게 죽어간 아내의 시신 앞에서

남편이 깨닫는 것은 자신을 억압한 군사정권이나,

아내의 불륜을 용서하지 못한 자신의 강팍한 심성이나

하나 다를 것이 없다는 자괴감으로 절규하게 됩니다.


두번 째 주인공 메메트는 정부군에 대항하는 테러리스트였죠.

그는 처남의 죽음을 외면하고 도망가다 잡힌 어두운 기억을 안고

다이바르크 까지 아내와 자식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납니다.

처가댁에서는 처남을 죽인 악질 매형이라는 이유로

아내와의 재회를 만류하지만 아내는 메메트를 따라나섭니다.

낡은 열차 안에서 몇 년만의 재회를 가진 가난한 부부는 화장실로 숨어들어갑니다.

그곳에서 관계를 갖던 부부는 사람들에게 발각되고 열차안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비록 부부임에도 불온한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하고 야유를 퍼부어댑니다.

그리고 이 부부는 뒤따라온 아내의 남동생에 의해 살해당하고 맙니다.

이렇듯 율법에 저당 잡힌 희망없는 인간의 삶이 스크린 가득 흘러 넘치는 영화 <욜>은

분명 고름과 상처의 로드무비입니다.

<길>을 다룬 수많은 걸작영화들이 있죠.

50년대 일본의 구로자와 아키라와 더불어 아시아 영화를 세계정상으로 끌어올린

동양의 거장이자 인도의 영화작가 쇼티아지트 레이가 1956년에 만든

<파테르 판챨리,Pather Panchali> 또한

인간과 길의 관계를 뛰어난 화법으로 풀어나간 영화 역사의 걸작이죠.

이러한 두 편의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KBS의 PD 김홍종 씨가 만든

<길 위의 날들> 또한 인간과 길을 다룬 수작중 하나입니다.

이들의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인간들은

끊임없이 근원을 찾아가는 순례자로서의 숙명을 안고 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어디론가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그 여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물과 빵이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을 긍휼히 여기는 사랑임을

이러한 작가들의 영화를 보고 나면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내가 지친 만큼 상대방 역시 인생의 여정에서 지쳐 있으며,

내 어깨를 주물러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상대방의 피곤한 발을 먼저 씻어줄 지혜의 눈이 필요한 것이,

수 백가지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인생의 여정임을,

이제는 고인이 된, 진짜 영화를 사랑했던 사람,

일마즈 귀니가 "욜,YOL-길"을 통해 말하고자 한 요점입니다.

당신 인생에서 꼭 봐야만 하는 감동과 철학의 영화입니다.


[DRFA,JONATHAN]






text by 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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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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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셔,eiche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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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8
한경민외1인 예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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