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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시작 : 2022-08-25 (목) 
선택시간 : 15:00 -17:00 



로베르토 로셀리니,Roberto Rossellini 감독

Ingrid Bergman ....  Katherine Joyce
George Sanders ....  Alexander 'Alex' Joyce
Leslie Daniels ....  Tony Burton
Natalia Ray ....  Natalie Burton
Maria Mauban ....  Marie
Anna Proclemer ....  Prostitute

4:3 full screen/흑백/2.0 디지틀 모노/85분
"1954' Bambi Awards 여우주연상
2013' Boston Society of Film Critics Awards 최우수 복원상"

언어/Italy+France
자막/한국
번역/DRFA,에뒤뜨





"시대를 앞서간 현기증나는 리얼리즘의 진수"




<이탈리아 기행>은 버그만과 로셀리니의 콜라보 필름 중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영화이자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자들에 의해

현대 영화의 진정한 출발로 간주되기도 했죠.

친척이 남긴 빌라를 팔기 위해 나폴리로 온 한 부부의 잠재되어 있던 심리의 위기,

그리고 화해 및 재결합의 과정을 통해,

세상의 모든 부부들을 둘러싼 환경과의 상호 작용이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비극을 빼어나게 보여 주는 심리극입니다.

고다르는 자신의 영화 <경멸>을 통해 <이탈리아 기행>에 더할 나위 없이 매혹적인 오마주를 바치기도 했습니다.

친척이 남긴 빌라를 팔기 위해 나폴리로 온 한 부부...

이들은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유적지를 둘러보기도 하지만 조금도 즐겁지가 않습니다.

가족과 직장에 묻혀서 지내던 일상적인 공간이 아닌 이색적인 이탈리아에서

그간 생활 속에 묻어왔던 감정들이 서서히 들춰질 뿐이죠.









사실 이 영화는 주인공 부부의 감정선의 변화를 제외하면

영화 전체를 이끄는 특별한 이야기 구조는 없습니다.

고풍스런 이탈리아 유적지는 불편한 주인공의 심기와 하나가 되어

또 다른 차원의 리얼리즘을 탄생시킬 뿐이죠.

40년대 후반의 '전쟁 3부작'으로 로베르토 로셀리니는 네오리얼리즘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부상했고,

단연 이탈리아의 자존심으로 추앙받았었죠.

하지만 잉그리드 버그만과의 스캔들로 그의 네오 리얼리즘의 명예는 한없이 실추되고 말았죠.

<이탈리아 기행>은 당대에는 이러한 스캔들 때문에 혹독한 비판을 면치 못했고 평가절하 되었지만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진들, 특히 앙드레 바쟁에 의해

<로셀리니 최고의 영화>로 재평가되었고,

트뤼포는 리얼리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새로운 리얼리즘을 구현한 영화라고 극찬했죠.










시대를 흔들었던 위대한 여자가 어떤 남자에게 빠져들어갈 때는

그 어떤 연유로 빠져들게 되는 것일까요?

1948년 뉴욕의 맨해튼.

잉그리드 버그만은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파이잔>을 보기 위해 텅 빈 극장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이미 2년 전 로셀리니의 네오리얼리즘의 걸작 <무방비 도시>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로셀리니의 대부분의 작품들을 다 찾아보았죠.

<무방비 도시>의 단순하고도 강렬한 리얼리즘 색채에 매료된 버그만은

<파이잔>을 본 후, 로셀리니에게 편지를 썼죠.


“만약 당신이 영어를 매우 잘하는,

이탈리아어는 그저 ‘사랑해 ti amo’ 밖에 모르는 스웨덴 여배우가 필요하다면,

나는 언제든 그곳으로 가서 당신과 영화를 찍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로셀리니는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버그만의 명성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버그만은 <가스등>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후

알프레드 히치콕의 <스펠바운드>와 <오명>, 레오 맥커리의 <성 메리의 종>,

빅터 플레밍의 <잔다르크> 등에 출연하며 할리우드 여신으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던 때죠. 

동료들은 로셀리니에게 버그만의 명성에 대해 넌지시 일러주었지만

그는 할리우드 대스타가 자신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로셀리니는 버그만이 자신의 영화에 출연하겠다는 의지를 영화에 대한

재정적 투자의 의미로 받아들였죠.

결국 버그만이 로셀리니의 신작에 출연하기로 하자

전설적인 미디어 재벌인 하워드 휴즈가 제작자로 나섰습니다.

휴즈는 에바 가드너를 비롯한 여러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렸으며

버그만에게도 반한 상태였죠.

이 위험한 사랑은 처음부터 폭탄을 안고 시작되었죠.

특히 버그만이 빼앗은 로셀리니는 유럽 영화계의 대선배 Anna Magnani 이죠.

자신 역시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로서 버그만은

왜 그다지도 무모한 사랑을 시작하였을까요?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버그만은 함께 한 첫 영화 <스트롬볼리>를 촬영하는 동안 두 사람은 아이를 가졌다)




두 사람이 함께한 첫 영화 <스트롬볼리>를 촬영하는 동안

두 사람은 이미 아이를 가지게 됩니다.

엄격한 청교도적 윤리가 팽배했던 미국에서는 맹비난이 쏟아졌죠.

국회의원과 종교 지도자, 시민 단체를 비롯한

전 미국 사회가 들고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스트롬볼리>는 유럽에서 대성공을 거둬드립니다.

<스트롬볼리>의 비관습적이고 비선형적인 내러티브는

버그만 팬들의 기호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지만

결국 버그만이 그토록 헐리우드 영화에서 찾지 못했던

여배우로서의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데는

결정적인 필모가 되고 맙니다.

로셀리니는 자신의 아내이자 영감의 원천인 버그만을 데리고

<유로파 51>, <이탈리아 여행>, <공포> 등의 영화를 차례로 완성해갔지만

수많은 영화 동지들로부터 네오 리얼리즘을 차디차게 배반한

배반자로 낙인 찍혔습니다.

잇따른 상업적 실패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은 버그만을 지치게 만들었고

결국 버그만은 로셀리니를 떠나

1956년 장 르누아르의 <엘레나와 남자들>을 찍은 후 다시 할리우드로 돌아갑니다.

로셀리니의 예술적 단물을 제대로 흡수한 버그만은

헐리우드 복귀작 <추상>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무서운 성숙의 연기를 보여줌으로서 단번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꿰어 찹니다.  








한편, 버그만과 헤어진 후 훌쩍 인도로 여행을 떠났던 로셀리니는

이후 험난한 영화인생의 길을 걷게 됩니다.

아무도 자신의 영화에 투자를 해주질 않자

"다시 처음부터" 라는 결단을 내어걸고

이상하리 만큼 자신보다 앞서간 시대의 명인들을 소박하게 조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탄생한 영화들이 바로 <파스칼>과 <소크라테스>, <갈릴레오> 등의

걸작 들입니다.

대륙을 횡단한 이 세기의 연인들은 이후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지만

서로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을 잊지 않았습니다.

버그만은 노년에 잉마르 베르히만의 <가을 소나타>에 출연한 뒤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죠.


“<무방비 도시>를 본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로셀리니와 사랑에 빠졌다.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결코 난 헐리우드의 그저 그런 여배우로 머물었을 것이다.

로셀리니는 내 일과 인생,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았다"


로셀리니와 버그만의 만남 중 가장 뛰어나다는 <이탈리아 기행>을

6월에 만나보겠습니다.



[DRFA,JONATHAN]

엮인글 :

profile

이츠카T35

2022.07.20 21:47:48

<이탈리아 기행> 예약합니다.

profile

윤실장

2022.07.21 06:35:53

이츠카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