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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시작 : 2022-08-23 (화) 
선택시간 : 15:00 -17:20 



프랭크 D. 길로이,Frank D. Gilroy 감독

Charles Bronson ....  Graham Dorsey
Jill Ireland ....  Amanda Starbuck
Douglas Fowley ....  Buck Bowers (as Douglas V. Fowley)
Stan Haze ....  Ape
Damon Douglas ....  Boy

16:9 wide screen/color/2.1 돌비 디지틀/100분
"1977' Golden Globes, USA 주제가상 후보"
언어/미국
자막/한국
번역/조나단 유 시나리오 스쿨,조한우





"영화 역사상 가장 저평가되고 오해 받았던 걸작을 당신에게 추천한다!"




저는 살면서 이 영화 만큼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 영화는 없었답니다.

 

<조나단의 내 인생의 영화 1000선>에 포함 시킬까 수도 없이 망설이기도 했던 영화랍니다.

 

이 영화는 찰슨 브론슨이 주인공이란 이유만으로

영화 역사상 가장 완벽하게 저평가된 영화입니다.

물론 그렇게 된 데는 제목도 한몫했습니다.

하지만 <정오에서 3시까지>란 제목은 총싸움 하는 시간이 아니라

주인공 두 남녀가 나누었던 정사의 시간을 뜻합니다.

이 영화는 서부영화의 탈을 뒤집어 쓴 전대미문의 컬트 마스터피스입니다.

여러분들도 보고 나시면 나 만큼이나 많은 생각과 상념에 시달리게 되실 것입니다.

 

정말 정말 재미 있고 철학적인 영화를 찾는다면

 

주저없이 추천 드리고 싶은 영화입니다.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찰스 브론손 때문에 하이눈이나 오케이 목장의 결투처럼

무슨 정오에서 3시 사이에 총싸움질 하는 영화로 오인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장르적 정체는 양파껍질처럼 겹겹으로 쌓여 있으면서

동시에 그 겹 사이에는 투명한 인생의 피막이 살짝 덮혀 있답니다.

솔직히 이 영화의 진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해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이 영화의 대강의 스토리를 살펴봅시다.


빌리 더 키드를 흉내내며 쪼잔한 마을의 불쌍한 은행이나 터는

강도 일당 벅스 보워 팀은 또 다시 은행을 털기 위해 글래드스톤이라는

그야말로 청교도 정신으로 뭉쳐진 시골 마을로 향합니다.

찰슨 브론슨은 이 벅스 보워 일당 중 그레이엄이라는 시답잖은 한 명으로 출연하는데

이 남자의 캐릭터를 잘 쫓아가야 합니다.

은행을 털기 전 그레이엄은 잠시 낮잠에 들었는데 그만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짧은 꿈을 꿉니다.

그것은 은행을 털던 자신들이 모조리 발각되어 다 죽어버리는 꿈입니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레이엄은

말이 다리를 다쳤다는 핑계로 동료들 뒤에 혼자 뒤쳐집니다.

그리고 그레이엄이 숨어 들어간 곳은 동네와 좀 떨어진

대 저택에서 홀로 고고히 살아가는 청상과부 아만다의 집입니다.

그레이엄은 이 아만다의 집에 들어가자 마자,

아만다에게 넋이 나가 아만다를 겁탈하기 시작합니다.

이 영화를 찍을 당시 원래 부부 사이였던 찰스 브론슨과 질 아일랜드의 사랑은

절정에 달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두 사람의 사랑 추격전은 스크린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듭니다.

아만다의 속치마가 찢어지고,

끊임없이 "안돼요,안돼!"를 외치던 아만다가 어느 순간

풀이 죽은 그레이엄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왜 더 이상 공격하지 않는 거죠?"


이 황당한 질문에 그레이엄은 더 황당한 대답을 합니다.


"실은 지가요, 발기부전입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도무지 그게 서질 않는데,

갑자기 죽은 그녀와 꼭 닮은 당신을 보는 순간 갑자기

그게 발동하는 바람에..."


그 말을 들은 아만다는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자, 힘을 내봐요, 제가 리드할께요..."


어쩌고 하면서 두 사람은 격렬한 섹스를 합니다.


마침내 천하의 난봉꾼, 변강쇠와, 옹녀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영화제목 정오에서 3시까지는 두 사람이 나누는 섹스의 시간을 말합니다.

그레이엄은 이 지루한 떠돌이 생활을 끝내고,

돈많고, 섹시하기까지 한 아만다와 정착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때 마을로부터 그레이엄의 동료들이 은행을 털다 모조리 잡혀

저녁 5시에 교수형이 집행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몽상주의 여자 아만다는 그 소식을 듣고 그레이엄에게

빨리 가서 동료들을 구하라고 등을 떠밉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 가서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평생 나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라며 그를 재촉합니다.

그레이엄은 할 수 없이, 말을 타고 동네로 향하는 척 하다가,

나무 밑에서 동료들이 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합니다.

그런데, 추격대들이 그레이엄이 남았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추격해옵니다.

급해진 그레이엄은 지나가던 이동 치과병원의 돌팔이 의사를 기절시키고

자신이 그 의사 옷을 입습니다.

기절해 있던 의사는 그대로 총살형을 당한 채 아만다의 집에 끌려 옵니다.

죽은 그레이엄의 시체를 보고 아만다는 기절해버립니다.





(우리나라에선 무슨 서부 영화로 오인받았던 불운의 영화)





동네 사람들은 아만다를 부정한 여자로 취급하고 돌을 던집니다.

어떻게 과부가 은행털이와 잘 수 있느냐며, 난리를 칩니다.

그대 아만다는 온 동네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외칩니다.


"나는 내 인생에서 그 정오에서 3시까지를 결코 잊지 못합니다!"


마침 지나가던 소설가가 그 대사를 듣고는

아만다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를 소설로 씁니다.

소설은 장난이 아니게 성공합니다.

멀리 일본부터 몽고까지 불티나게 팔려나갑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이 정오부터 세시까지의 소설을 읽고 눈물을 훌쩍이고,

아만다에게는 하루에도 수천통의 팬레터가 쇄도합니다.

아만다의 집은 이제 관광명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 그럼 우리의 그레이엄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기가 막히게도 돌팔이 의사를 복장을 입고 아만다의 집으로 오던 그 날,

그 의사에게 사기 당한 노부부가 보안관에게 신고했습니다.

이빨 치료하다 자신의 금이빨을 빼갔다고요,

그레이엄은 1년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서 아만다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읽으며,

출소의 날만을 기다립니다.

마침내 그레이엄이 출소하고,

두 사람은 행복한 재회를 했느냐고요?

아닙니다.

영화는 철저하게 비극으로 끝이납니다.

그레이엄이 아만다를 찾아가서,

자신이 그레이엄이라고 하자,

아만다는 펄쩍 뜁니다.


"내 기억 속의 그레이엄은 적어도 당신보다 키는 10센티 더 크고,

옴팡지게 멋진 남자였다"


라며 그레이엄을 부인합니다.

그때 그레이엄은 두 사람이 추었던 추억의 왈츠를 추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아만다는 춤을 추면서 이 놈이 바로 그레이엄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만다는 끝까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시치미를 뗍니다.

그레이엄으로서는 환장할 노릇입니다.


"나야, 당신의 변강쇠,,, 그레이엄~"








그래도 아만다가 믿지 못하자, 찰스 브론슨이 갑자기 자신의 바지 지퍼를 열고

자신의 그 무엇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그 무엇이 뭔지를 모르는 분은 없겠죠.

그레이엄의 그 무엇을 확인한 아만다는 더 이상 빠져나갈 길이 없자

참으로 희한한 말을 합니다.

만약, 이대로 돌아서서, 영원히 죽은 척해주면,

매주 나의 인세에서 100달러씩 송금해 주겠다며 협상을 합니다.

당시로서의 100달러는 엄청난 돈이죠.

대체 이유가 뭐냐고 그레이엄이 묻자...

아만다는 말합니다.


"당신과 나는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우리의 소설을 읽고 희망을 얻은 수많은 독자들의 꿈이다"

라고

말합니다.

개뿔같은 소리 집어치워라며,

나는 기필코 당신하고 같이 떠날 것이라고 말하는

그레이엄 앞에서 아만다는 그만 방아쇠를 당깁니다.

총소리에 그레이엄이 질건 감았던 눈을 떠보았을 때 아만다는 죽어 있습니다.

아만다는 사랑 대신에 자신의 몽상을 선택한 것입니다.

물론 그녀는 그 선택을 사랑보다 우위에 있는 놀라운 비전이었다고 항변하겠지요.

아만다의 예언대로 다음 날 전국은 눈물 바다가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못잊어 결국은 자살을 선택한 비운의 여자 아만다!"


수많은 조문객이 마을을 찾아오고,

아만다는 그토록 자신이 꿈꾸던 정말 신화가 되어버렸습니다.

홀로 남겨진 그레이엄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그날 부터 그레이엄은 아만다가 남겨놓고간

형이상학적 삶의 연결고리를 풀기 위해 알콜중독자가 되어갑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바로 그 그레이엄이라고 소리쳐보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은 신성한 그레이엄의 이름에 먹칠 한다며

그레이엄을 죽을 때까지 때립니다.

그레이엄은 철저하게 혼자 남게 되고,

그리고 철저하게 고독하게 죽어갑니다.

대체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이 영화는 영원히 오리무중입니다.


"사랑의 소중함을 깨달았을 때 당신은 가고 없었다...."


라는 시인의 싯귀처럼,

우리 인간들은 너무 늦게 사랑의 실체 앞에서 다가서는 것일까요?

대체 아만다는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요?

그리고 대체 이 영화는 코메디인가요?

아니면 철저한 비극적 서사극인가요?

오늘은 여러분에게 너무 많은 질문을 남겨두며 끝을 맺습니다.




[DRFA,JONAT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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