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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30 (수) 
"극장 출발 전 상영 시간과 영화 제목 최종 확인해주세요! 극장 사정상 예고없이 30분에서 최장 1시간이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쟝 마크 발리,Jean-Marc Vallée 감독

Emily Blunt ... Queen Victoria
Rupert Friend ...Prince Albert
Paul Bettany... Lord Melbourne
Miranda Richardson ...Duchess of Kent

2.35 : 1  screen/color/DTS (as dts)/105분
"2010' Academy Awards, USA 미술상 후보, 의상상 수상
2010' Golden Globes, USA 여우주연상 후보
2010' BAFTA Awards 의상상
2010' Broadcast Film Critics Association Awards 의상상
2010' CinEuphoria Awards 의상상
2009' Cinéfest Sudbury 관객상
2010' Costume Designers Guild Awards 관객상
2010' Gold Derby Awards 의상상
2009' Hamptons International Film Festival 관객상
2011' Jupiter Award 여우주연상
2009' Phoenix Film Critics Society Awards 의상상
2010' Santa Barbara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여우주연상
2010' Vancouver Film Critics Circle 여우주연상"

언어/UK+USA   
자막/한국
번역감수/DRFA,김교수




"영화 <미세스 브라운>의 그 깊은 슬픔에 빠진 여왕의 아름다운 사랑이 소개된다"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1819~1901)



우리는 최근 DRFA에서 <미세스 브라운>이라는 영화를 만나 보았죠.

그 영화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깊고 깊은 시골숲으로 도피해버린 빅토리아 여왕과

그런 여왕을 다시 세상으로 불러내려는 브라운 이라는 한 남자의 눈물 겨운 우정을 목격하였죠.

그렇다면 대체 빅토리아 여왕은 왜 그토록 깊은 슬픔의 호수에 빠져 버렸던 것일까요?

전기 작가 스탠리 웨인트럽은 빅토리아 여왕에 대해 이렇게 썼죠.


빅토리아 여왕은 국민의 애정, 전통에 대한 동경,

그리고 충성심 높은 중산층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더욱 강화된 의례적인 군주제를 유산으로 남겼다.

그녀는 영국 그 자체이다”


유럽사에 있어서 19세기는 영국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영국은 자칭, 타칭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라고 불렸습니다.

지구가 돌아 영국에는 밤이 오더라도

세상 어딘가 영국의 식민지 중 한 곳 이상은

낮이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었죠.

빅토리아 시대는 1837년부터 1901년까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던 64년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19세기의 2/3에 해당하는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기간 동안

영국은 전무후무한 역사상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영국 고유의 전통은 이 시기에 비로소 정돈이 되었고,

유럽 어느 나라보다 먼저 해외에 눈에 돌렸기 때문에

이즈음에 와서는 세계 곳곳에 영국 식민지를 두어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확보하였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사람이 바로 빅토리아 여왕이었습니다.

그녀의 존재는 그 상징성만으로 19세기 영국의 행보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죠.


빅토리아 여왕은 조지 3세의 4번째 아들 켄트공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조지 3세는 많은 아들을 두었고 빅토리아 여왕의 아버지 켄트공이

장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빅토리아 여왕에게 왕위는 그다지 가까운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삼촌들이 하나같이 제대로 된 결혼에서 적장자를 낳지 못하고

설사 낳더라고 모두 요절하는 바람에,

빅토리아는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영국 왕실의 정당한 왕위 계승자로 남게 됩니다.

조지 4세가 정당한 계승자 없이 사망한 이후

왕위는 조지 3세의 3째 아들 윌리엄 4세가 이어받게 되죠.

윌리엄 4세는 혼외에서 낳은 사생아들은 많았지만

정작 정당한 결혼에서 낳은 아이들은 모두 죽어

결국 읠리엄 4세 사후 영국 왕위는 빅토리아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나이 20세 때 어린 시절 따랐던

레오폴드 벨기에 국왕의 주선으로

독일 색스 코버그 고타가의 왕자 앨버트 공과 결혼합니다.

앨버트 공은 그녀와 동갑으로 외사촌 간이었죠.

빅토리아 여왕은 처음에는 앨버트 공에게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앨버트 공이 가진 진중함과 사려 깊음에 빠져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영혼은 남편에게 완전히 사로잡혀 버렸다고 하네요.

앨버트 공은 자신들의 정신적인 지주, 멜번 경이 실각 한 뒤

빅토리아 여왕을 보좌하면서 그녀에게 군주의 도를 깨닫게 하였으며

정치적으로 편협했던 시각도 넓게 확장시켜주었습니다.

여왕은 남편의 지적이고 믿음직한 태도에 무한한 신뢰를 가지게 되었고

국무회의 때면 언제나 앨버트 공과 대동하였죠,

남편을 전폭적으로 신뢰했으며 그의 판단을 완전히 믿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20년 결혼생활 동안

명목상 영국의 국왕은 빅토리아 여왕이었지만

실제적인 군주는 앨버트 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그는 왕실의 재산관리뿐만 아니라 외교문제에서도 관여하여

분쟁을 막아냈고 국제 박람회도 성공적으로 치러냈습니다.

앨버트 공은 처음에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영국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받았지만

왕실 사람답지 않게 청교도적이고 성실한 삶의 태도는

빅토리아 여왕과 왕실에 그대로 영향을 미쳤고

도덕적이고 청빈한 왕실은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무려 9명의 자녀가 태어납니다.

하지만 이 사랑이 어느 날 무참이 깨어집니다.

앨버트 공이 장남 에드워드를 만나러 케임브리지에 다녀오다가

정체불명의 병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면서 21년의 결혼 생활이 끝납니다.

이후 빅토리아 여왕은 거의 40년을 홀로 살면서 평생 검은 옷을 입고

미망인을 자처하며 앨버트 공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이 과정이 영화 <미세스 브라운>에 자세히 나오죠.


오늘 소개하는 영화는 21세기 전 세계 영화계의 문제아로 대두된 쟝 마크 발리의 작품으로

그는 지적이고 우아한 유럽의 봉준호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장 핫하고 우아한 문제작 4편을 집중으로 소개해볼까 합니다.

미장센이나 시나리오의 분석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하는 감독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이 새로운 감독과의 만남에 깜놀하시게 될 겁니다.

영화를 굉장히 우아하게 찍어냅니다.

그 첫번째 주자로 <영 빅토리아>부터 만나보시죠.



[DRFA,JONATHAN]

엮인글 :

청민

2022.10.24 14:50:13

영빅토리아 8명 예약 부탁드립니다.

profile

유감독

2022.10.24 15:09:57

청민(8/R5.0)

호랑T(2)

초이T(4)

지휴T

고영희T(2)

이경자(2/ND)

 

 

 

호랑

2022.11.16 19:37:40

박선희2명

꽃마리초이T584

2022.11.20 12:21:24

4명 예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