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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시작 : 2022-06-06 (월) 
선택시간 : 15:00 -17:00 


이브 치암피,Yves Ciampi 감독

Thomas Holtzmann   ...  Richard Sorge  
Mario Adorf  Mario Adorf   ...  Max Klausen  
Shinobu Asaji  Shinobu Asaji   ...  Ozaki's wife  
Nadine Basile  Nadine Basile   ...  Anna Klausen  

1.37 : 1  screen/Color (Metrocolor)/Mono/129분
언어/France+West Germany+Italy+Japan
자막/한국
번역/DRFA,서은영





"오늘 날 대한민국이 이 만큼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근원이 되었던 사람, 리하르트 조르게를 만나보세요!"





(리하르트 조르게,Richard Sorge,1895년 10월 4일~1944년 11월 7일,그는 그동안 수많은 러시아의 국영 우표로 제작되었다)




오늘 날 러시아의 대사들이 일본을 방문하면 가장 먼저

리하르트 조르게의 무덤에 가서 참배를 한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러시아의 안중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자신을 철저히 나치 신봉자로 신분 세탁 후,

독일 신문의 일본 특파원으로 가장해서

일본과 독일의 연맹 작전의 주요 정보를 빼내어 소련에 넘김으로서

일본과 독일에게 뼈아픈 패전국의 딱지를 붙여준 불멸의 스파이입니다.

1944년 일본은 리하르트 조르게를 처형한 후에

그의 시신을 태울 연료조차 아깝다며 그의 시체를 아무렇게나 방치했다고 합니다.

그의 일본인 연인 Hanako Ishii(1911~2000)가

1949년 11월 16일에 리하르트의 해골을 찾아 회수했죠.

그녀는 시모오치아이의 화장장에서 그의 유골을 화장한 후

1년 동안 일본 정부와 싸운 후 결국 그의 유골을

도쿄 후추에 있는 타마 공동 묘지의 16구역 1구역 21행 16구역에 안장 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비문에 일본어로 이렇게 새겼죠.

"세계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한 영웅이 여기 눕다"

이후 하나코는 200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리하르트의 무덤을 지켰으며

자신이 죽은 후 그의 곁에 안장해달라는 유언에 따라 그녀의 유해는

리하라트의 곁에 묻히게 됩니다,


너무나 만나고 싶었던 이 영화를 마침내 DRFA 불어 번역의 여신

서은영님의 번역으로 만났을 때의 그 희열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너무나 오랜 세월을 필름을 찾아 헤맸답니다)





리하르트 조르게는 러시아 제국의 사분치(현재의 아제르바이잔의 바쿠)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독일인 유전 기술자였고, 어머니는 러시아인이었죠.

아버지는 코카서스 석유 회사에 고용된 기술자였으나,

계약이 해지되어 독일의 베를린으로 돌아옵니다.

리하르트의 친조부의 형제였던 프리드리히 조르게는 공산주의 이론가인 마르크스의 동지였습니다.

1914년 10월 조르게는 제1차 세계 대전시 학도 자원병으로 참전하였고

서부 전선에 파견되어 크게 부상당했는데,

이때 손가락 세 개를 잃고 평생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그는 철십자 훈장을 받았지만, 이러한 부상 때문에 제대를 했죠.







이후 조르게는 첩보 요원으로 선발되어 신문 기자로 신분을 위장,

유럽의 여러 나라에 파견되었죠.

그는 1920년부터 1924년까지 독일에서 머물렀는데

이곳에서 옛 스승 알베르트 게어라흐의 아내였던 크리스티네와 결혼을 합니다,

이후 1924년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소련의 첩보 기관인 국가 정치부에서 정보 분석가로 일하면서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합니다.


1929년 조르게는 소련군의 제 4국 (GRU, 군사정보국)으로 자리를 옮기고

그는 사망할 때까지 이 부서의 소속 요원으로 일합니다,

이후 GRU의 명령에 의해 독일로 건너 가 그곳에서 나치당에 가입하라는 지령을 받고 이에 따릅니다.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농업 신문인 도이체 게트라이드 차이퉁(Deutsche Getreide-Zeitung)에 기자로 취직하죠.

1930년에는 조르게는 중국의 상하이로 가서 정보 수집과 혁명 공작을 합니다.

그는 농업 전문가로 행세하여 중국 각지를 여행하면서

당시 장제스의 대대적인 탄압을 피해서 지하로 숨어 있던

중국 공산당의 당원들과 접촉했죠.

1932년 그는 일본군과 중국군이 싸운 제1차 상하이 사변을 취재한 후

12월 모스크바로 소환됩니다.

이때 소련 정보당국은 조르게에게 일본으로 가서 첩보망을 구성하도록 명령합니다.


조르게는 일단 독일로 돌아가서 철저한 나치스로 위장하고, 새로운 신문사에 들어갑니다,

특히 술에 취해 혹시 신분을 노출 시킬까봐 그토록 좋아하던 술도 끊습니다.

1933년 9월 6일 조르게는 요코하마에 도착했죠.

그곳에서 그는 일본인과 외국인, 그리고 사업가와 신문 기자등으로 구성된 첩보망을 조직합니다.

그의 요원들은 일본의 저명한 정치가들과 접촉하여 일본의 대외 정책에 관한 정보를 수집합니다.

특히 오자키 호츠미는 총리였던 고노에 후미마로의 정책 보좌역이 되어

일본 정부의 특급 기밀 문서를 빼내어 조르게에게 넘깁니다.

그는 공식적으로 나치의 열렬한 지지자로 위장했기 때문에

주일 독일 대사관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도 고급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죠.

조르게는 이렇게 얻은 <독일-이탈리아-일본의 방공 협정>과 <독일-일본 협약, 진주만 공격의 정보>를 빼내어

소련에 전달했습니다,




(너무나 어렵게 구하고 어렵게 번역한 작품입니다, 이 기회에 꼭 보세요!)
 

 






특히 1941년 일본 주재 독일 무관에게서 정보를 빼내,

독일의 소련 침공 계획인 바르바로사 작전의 정확한 개시 일자(6월 22일, 혹은 그보다 앞선 6월 20일)을

전달했지만  스탈린이 이를 무시하여 소련군의 대패를 초래하게 됩니다,

이후 소련은 서쪽을 침공한 독일에 발맞추어

동맹국 일본도 아시아쪽에서 협공할 것을 우려하였는데,

1941년 9월 14일 조르게는 이에 관련한 일본군의 동향을 소련에 전달합니다,

핵심은 바로 <독일군이 모스크바를 함락시키기 전까지는 일본군은 소련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 이었죠.

이 첩보에 근거하여 소련군은 일본 관동군에 맞서 극동에 배치된

정예 병력을 빼내 서부로 돌렸고,

이 병력은 모스크바 공방전에 투입되어 동부 전선에서 소련군이 독일군을 처음으로

대패시키는데 공헌하게 됩니다.


일본이 전시 국면으로 치달을수록 조르게가 첩보 활동을 벌이는 것은 거의 죽음을 불사하는 행위였죠.

하지만 전쟁은 중대국면으로 치닫고 있었기 때문에

조르게는 첩보활동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그가 끊었던 술을 다가오는 체포의 공포로 인해

다시 입에 담게 된 것도 이 즈음이죠.

소련에서 쓰이던 1회용 암호표에 의한 무선량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에

일본의 방첩기관 특별고등 경찰은 이를 인지했고 엄중한 감시를 하던 터에

조르게의 오른 팔이었던 오자키가 1941년 10월 14일 먼저 체포되고

조르게는 10월 18일 도쿄에서 체포됩니다,

일본은 조르게와 소련에서 붙잡힌 일본 간첩과 맞교환하려고 했지만

조국 소련은 조르게의 존재를 철저하게 부인하면서

조르게는 1944년 11월 7일에 스가모에서 교수형 당합니다.


그의 일본인 연인이었던 이시이 하나코가 그의 유해를 수습해서

도쿄의 타마 공동묘지로 이장하고

그녀가 살아있던 2000년까지 계속 조르게의 묘를 관리했다고 합니다,







이브 치암피의 이 영화가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일본의 공동 제작으로

개봉되기 전까지는 소련의 서기장 흐루쇼프 조차도  리하르트 조르게의 존재에 대해

크게 인지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뒤늦게 이 영화가 소련에서 개봉되자 소련의 국민들은 자신들이 잊고 있었던 한 남자에게 대해

뒤늦은 참회와 반성으로 열광했다고 합니다.

이에 직접 극장을 찾아 이 영화를 본 소련의 서기장 흐루쇼프는

첩보기관이었던 국가보안위원회(KGB)에게 이 영화가 어느 정도까지 사실이냐고 물었고

영화의 대부분이 사실이라는 답변을 듣게 되었죠.

이에 흐루쇼프는 1964년 조르게에게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수여했고,

조르게가 공식적으로 자국 요원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또한 조르게의 일본인 연인 이시이 하나코에게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연금을 주게 됩니다.

이때부터 일본에 부임하는 주일본 소련 대사는 부임후 리하르트 조르게의 묘를 가장 먼저 찾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 개봉 후에 동독에서도 파시스트 체제에 대항하며 장렬하게 숨져간 조르게를 높이 평가하여

그의 전기가 발표되고 기념 우표를 발행하는 등, 기념 사업을 하게 됩니다,

일본과 폴란드에서는 그의 전기를 다룬 만화가 출판되기도 합니다.

2003년 제국주의를 반성하던 일본에서도 '스파이 조르게'라는 영화가 만들어졌고

이외에도 여러 편의 책이 그를 주제로 씌여졌습니다.

하지만 정작 일본의 패전을 이끌어낸 한 이름없는 영웅의 삶을

우리나라에서만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가슴 아플 뿐이죠.


조나단 유는 일찍부터 이 분의 삶을 영화로 만든 이브 치암피의 필름을

오랫동안 찾아 헤맸답니다,

결국 찾아내긴 했지만 과연 이 장대한 전기물을 누가 번역해줄까 고민했는데

허리도 시원찮은 우리 서은영님이 너무도 멋지게 번역해 주셨습니다,

다가오는 현충일에는 부디 여러분의 무덤덤한 지각을 잠시만이라도

리하르트 조르게 라는 사람에게로 향해보는 것은 어떨런지요?


나치와 일본의 전체주의가 인간의 자유로운 삶을 반드시 무너뜨리고

또 짓밟고 말리라는 선각자적인 시안을 가졌던 사람,

우리가 오늘 날, 이 만큼의 자유를 누리고 사는 것은

물론 안중근 열사님의 투혼도 있지만

바로 이렇게 이름도 빛도 없이 자신을 다 불싸지른 리하르트 조르게 같은 분이 계셨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필름 구입에서 번역까지,

여러분들에게 이 영화를 소개하기까지 무려 30년의 세월이 걸렸네요.

이런 보석 같은 선물을 줏어담는 것은

이제 여러분의 몫으로 남습니다.



[DRFA,JONAT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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