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02-09 (목) |
"극장 출발 전 상영 시간과 영화 제목 최종 확인해주세요! 극장 사정상 예고없이 30분에서 최장 1시간이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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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 레이즈,Karel Reisz 감독
Vanessa Redgrave ... Isadora Duncan
John Fraser ... Roger
James Fox ... Gordon Craig
Jason Robards ... Singer
1.66:1 Widescreen/color/2.1 thx/140분
"1969' Cannes Film Festival 황금종려상 후보,여우주연상 수상
1970' National Board of Review, USA 올 해의 탑 텐 영화
1970' National Society of Film Critics Awards, USA 여우주연상 수상
1969' New York Film Critics Circle Awards 여우주연상 수상
19691969' Academy Awards, USA 여우주연상 후보
1969' Golden Globes, USA 여우주연상 후보
1970' BAFTA Awards 의상상,음향상 후보"
언어/UK+France
자막/한국
번역감수/DRFA,조한우
"2년전 DRFA에서 상영되었을 때 기립박수가 나왔던 불후의 걸작"
이사도라 던컨의 아버지는 은행의 출납계원이면서 시를 썼고
어머니는 음악 선생이었습니다.
시인 아버지는 노처녀와 사랑에 빠져 어머니와 이혼을 했죠.
이사도라가 태어난 직후의 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네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힘겨운 살림을 꾸려나갔죠.
척박한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 어머니는 불가지론자 로버트 그린 잉거솔의 적극적인 추종자가 되었고
아이들에게 종교에 있어서나 인습에 있어서나 반항적인 태도를 심어 주었습니다.
이런 어머니의 전략에 의해 이사도라 던컨은 어렸을 때부터 세상의 모든 관습을 일단은
의혹의 시선으로 보는 습관이 생겼죠.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춤을 추었다는 이사도라는 언니 엘리자베스와 함께
이미 십대부터 이미 동네 어린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쳐 생계를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동네 3류 나이트 클럽에서 춤을 추다가
엔터테인먼트의 캐스팅 보드의 눈에 띄어 그녀는 어떤 무대의 단역을 맡게 됩니다.
줄충...
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 뉴욕의 거물들은 그녀를 일찍부터 사교계의 무대로 끌어들였지만
그녀는 정통 발레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두려워 모든 제안을 거부하게 되죠.
"이사도라 주제가로 유명해진 추억의 폴모리아 악단"
Paul Mauriat는 1925년에 프랑스 남부에 마르세이유(Marseilles)에 있는 클래식 음악가정에 태어났다. 아마츄어 음악가였던 그의 아버지는 Paul Mauria를 4살부터 Academy of Music in Marseilles(the Conservatory of Marseilles)에서 음악공부를 가르킨다. 1935년 그가 10살 되던 해에 가족들이 Paris로 이주하게 되면서 파리음악원(the Conservatoire in Paris)에서 공부를 하게 되는데, 14살에 그는 수석졸업장과 함께 탄탄한 클래식음악의 기초소양을 가지고 졸업한다. 졸업 후 클래식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폴모리아는 오히려 팝음악과 재즈에 의 관심갖게 되고 이에 사로잡히게 된다. 파리음악원을 졸업한 그는 17세의 젊은 나이에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몇 년 동안 유럽 지역을 공연하며 다녔다.그후 폴모리아는 얼마 전 타계한 Frank Pourcel(프랑크 푸르셀) 오케스트라의 피아니스트 등을 거치며 계속 활동을 해오다가 한 음반 제작자의 제의로 샹송의 거장 Charles Aznavour의 앨범에 편곡과 지휘자로 참여하면서부터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다.한편 Paul Mauriat는 1960년대 들어와 자신만의 독특하고 현대적인 비트감을 지니면서도 멜로디를 선명하게 해 주는 편곡스타일로 자신의 앨범들을 발표한다. 그의 작곡품인 "Rendez-vous au Lavandou", "La longue marche" 등의 곡이 불란서 전국에서 히트를 하게 되어 작곡가로도 활약하게 된다.
그녀가 정통 발레를 하기 위해 유럽행을 결심한 것은 스물한 살 때 입니다.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가축 운송선을 타고 런던에 도착한 그녀와 형제들은 우연한 도움으로
런던 사교계에 소개됩니다.
무대 위에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하늘 거리는 얇은 의상을 걸친 채
맨발로 자유롭게 걷고 달리고 뛰고 구르는 것만으로 이미 이사도라 던컨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냅니다.
뮌헨에서는 학생들이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는 그녀의
마차에서 말을 떼어버리고 자신들이 마차를 끌기까지 했습니다..
1903년에는 형제들과 함께 그리스에 가서 고대적인 풍광 가운데 자신을 풀어놓고
일년 내내 마음껏 춤추며 지냈으며,
1904년에는 독일의 그루네발트에 학교를 세우고
빈민층 소녀들을 가르치랴 재원 마련을 위해 순회 공연을 하랴 분주한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그 무렵 춤에 대한 그녀의 생각도 무르익어갔죠.
파도나 바람 같은 자연 현상에서 영감을 얻은 유연한 동작으로 내적 감정을 표출하던 그녀는
대영박물관에서 고대 그리스의 조각들을 보고
인체의 곡선이야말로 항구적인 아름다움의 이상임을 확인했으며,
독일에서는 니체의 사상에 깨우침을 받아 춤이야말로
인간의 영혼을 가장 자유롭게 표현하여
종교의 경지에까지 이르는 고도의 예술임을 선언했습니다.
부모의 불행한 결혼을 보고서 이미 열두 살 때 독신을 맹세한 터였지만,
그녀 자신도 사랑 앞에서는 약한 여성이었습니다.
1906년에는 런던의 무대 디자이너 고든 크레이그에게서 첫 딸을 낳았으며,
1910년에는 미국의 부호 파리스 싱어에게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1913년에는 그 두 아이가 유모와 함께 자동차에 탄 채 세느 강에 익사하는 비운도 겪게 됩니다..
불행을 딛고 파리에 다시 학교를 열려던 계획이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무산되자
미국으로 돌아갔던 그녀는 세번째 아이를 사산했고,
종전 후 남아메리카,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순회공연을 계속했지만
이전 만한 성공은 거두지 못했습니다.
920년에는 모스크바 무용학교 설립을 위촉 받아 러시아에 갔다가
17세나 연하인 천재 시인 에세닌을 만나 결혼했으나,
당시 반공산주의 분위기가 팽배해 있던 미국에서
두 사람은 '볼셰비키'로 낙인 찍혀 다시금 방랑길에 올라야 했죠.
유럽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에세닌은 혼자 러시아로 돌아가 1925년 자살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의 죽음, 사산, 예술가로서의 좌절,
불행한 결혼 생활, 남편의 자살...
그녀의 말년은 비운으로 얼룩졌습니다.
그리고 그 화려하고도 파란 많은 생애는 극적인 죽음으로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남불의 휴양지 리비에라 해안의 니스에서
그녀를 숭배하는 젊은 청년이 스포츠카를 가지고 와서 드라이브를 권했죠.
다소 차가운 날씨였으므로 그녀는 쇼올을 둘렀고
차가 출발하는 순간, 술이 바퀴에 말려들어갔고,
그녀는 목이 졸려 즉사했습니다.
그녀는 가고 없지만 그녀가 온 몸으로 보여준 모범을 통해
무용은 음악이나 미술, 시와 나란히 정상의 예술로서 자리잡게 되었으며,
그녀가 모색한 이른바 "미래의 무용"은 오늘날 현대 무용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DRFA]
<이사도라 던컨>
자주자주 동행한 언니가 유감독님의 피아노 연주 중 가장 감동이었답니다.(항상 감동이지만 오늘따라 더욱...) 언니가 전자올겐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다가 접었답니다. 감독님의 항상 온몸으로 연주하시는 모습 때문에-자신감이 뚝.)
<이사도라 던컨>하면 두가지만 기억난다.
하나. 영국의 저명인사 조지 버나드 쇼에게 구혼한 이야기 “선생님과 제가 결혼해서, 나의 육체와 선생님의 머리를 가지고 아이가 태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대답은 “당신의 머리와 나의 육체를 닮은 아이가 태어나다면 그건 재앙이지.”
둘. 자동차의 뒷바퀴에 스카프가 감기면서 질식사하는 비운의 댄서로...
본인의 대부분 지인들은 동검도예술극장 DRFA에 방문했었다. 성남, 대전, 수원, 서울, 공주 등 전국 각지에서...
오늘은 처음방문하신 충남천안 거주자 언니께서 “강화에 엄청 방문했었는데 왜 여기를 몰랐었는지 이해가 안된다.”면서 빨리 형제들과 방문하고잡다고...
<이사도라 던컨>은 음악, 미술, 시, 니체, 베토벤, 쇼팽, 로댕, 사랑, 충격, 힐링, 후회(너무 늦게 DRFA 방문한), 존경, 아름다움, 선진미래, 자유로운 영혼, 등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할 수 없는 영화였다고-
거의 DRFA의 영화는 <해피엔딩>이었는데 <이사도라 던컨>의 마지막은 충격적인 죽음인데도 뭔지모를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동검도의 아름다운 풍경속에 묻혀서 한 시간 정도 산책 + 영화감상으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제 삶의 모습이 너무나 멋지고 부럽답니다.
동검도예술극장 DRFA를 방문하면서 전 참 오래-오래-살고 싶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요렇게 만인에게 힐링의 시간을 제공해 주시는 유감독님께서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천수를 누리시는 것이- ^^

2월 9일 정미영 T (9명 예약합니다.) 티겟(관람권+음료) 9장 예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