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04-06 (목) |
"극장 출발 전 상영 시간과 영화 제목 최종 확인해주세요! 극장 사정상 예고없이 30분에서 최장 1시간이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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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 그린,Guy Green 감독
Anthony Quinn ... Will Cade
Ingrid Bergman ... Libby Meredith
Fritz Weaver ... Roger Meredith
Katherine Crawford ... Ellen Meredith
1.35:1 letter box/Color (Eastmancolor)/2.0 돌비 디지틀/98분
언어/미국
자막/한국
번역/DRFA 365 예술극장,유감독
"사랑의 열병도 중년의 무게 앞에서는 부질 없는 것"
발표 당시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세월이 지날수록 매니아층이 형성되는 영화 있죠?
오늘 <봄비>가 그렇습니다.
가이 그린 감독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영화들만 스크린에 옮기는데
그 사실주의 묘사가 장난이 아닙니다.
1913년 영국 소머셋에서 태어난 가이 그린 감독은 2005년 비벌리 힐즈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8편의 걸작을 만든 감독입니다.
감독을 하기 전에는 데이빗 린 감독의 <위대한 유산>의 촬영감독을 맡아
아카데미에서 영국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촬영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감독을 하면서 손을 댄 영화들은
세상의 소외받은 구석에서 고독으로 발발 떨고 있는 가련한 사람들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그의 대표작이자 DRFA에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던 <푸른하늘>에서도
장님이면서 친모에게 가정학대를 당하는 소녀의 고독을 놀랍게 스크린에 담아내었죠.
그가 이번에는 <봄비>에서 중년의 이룰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랑에 대해
카메라를 들이밉니다.
번역을 시작하기 전에는
잉그리드 버그만과 안소니 퀸의 그저 그런 불륜극 혹은 사랑의 열병이라 속단했는데
번역이 끝나고 드는 생각은
오히려 로자문드 필처 여사님의 <조개 줍는 아이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폭설이 내린 겨울의 별장,
잉그리드 버그만이 연기하는 리비는 교수인 남편을 따라
깊은 산 속의 산장에 도착합니다.
남편은 뉴욕 명문대의 법대 교수님으로
죽기 전에 근사한 법학 책 한 권을 쓰는 것이 소원입니다.
리비는 그런 남편의 곁에서 오타를 봐주거나,
어색한 문장을 고쳐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녀에게는 결혼해서 아들을 하나 낳은 엘렌이라는 딸이 하나 있는데
이 영화의 주축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캐서린 크로포드가 연기하는 엘렌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워킹 맘을 연기합니다.
영원한 미스테리는 이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가 왜 딱 이 한 편의 영화에만 출연하고
TV연속극 속으로 숨어버렸을까요?
딸 엘렌은 뒤늦게 법학을 공부, 하버드 대에 편입하려는 여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입학 허가가 나오자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옵니다.
그리고 엄마가 왜 나의 아이를 봐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정말이지 일목요연하게 혹은 논리정연하게 따박 따박 엄마를 설득시킬 때는
스크린에 뛰어 들어가 머리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네요.
그런 딸을 엄마 리비는 측은하게 쳐다봅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하죠,
딸아, 어쩌면 좋으냐,
이 엄마는 지금 한 남자를 뜨겁게 사랑하고 있단다...
물론 너의 아빠는 아니야...
이제 엄마는 뉴욕으로 돌아가서 손주나 봐주기에는
너무나 깊은 사랑의 늪에 빠져버렸단다...
리비가 뒤늦게 사랑에 빠진 남자는 평생을 이 시골에서 농사나 지어온
무식한 옆집 남자 윌입니다.
아니, 윌은 무식하지 않습니다.
그는 한 겨울에도 싱싱한 물미나리를 어디서 구하는지를 아는 남자입니다.
그리고 봄이면 지천을 뒤덮는 온갖 종류의 벚나무들의 이름을 모조리 다 외우는 남자입니다.
그리고 황소 개구리가 구애를 할 때는 어떤 울음을 내는지도 압니다.
한마디로 자연의 박사이죠.
반면 윌의 아내는 너무나 너무나 무식한 촌부입니다.
감독이 일부러 캐스팅을 해도 어쩜 그런 분을 캐스팅했을 까요?
하루 종일 밭일에다, 빨래에다, 쿠키를 굽고
코를 풀고 아무 옷에나 닦는 시골 아줌마입니다.
그런 아내와 평생 살아온 윌의 눈에는 이웃집에 잠시 쉬러 온 잉그리드 버그만이
잠시 겨울 연못에 목욕하러 내려온 선녀로만 보일 뿐입니다.
윌은 리비에게 시골 생활의 A부터 Z까지 다 가르쳐줍니다.
염소를 다루는 법,
우물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법,
울타리를 치는 법,
그렇게 두 사람은 가까워지죠.
리비는 그런 윌에게 점점 빠져듭니다.
법조문만 읊조리는 남편이 한 번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진짜 모습을
윌은 수시로 일깨워줍니다.
하지만 비극은 늘 뜻밖의 사건에서 시작되죠.
윌에게는 가정교육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받아보지 못한 천하의 망나니 외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그 아들이 두 사람의 불륜을 눈치 챈 거죠.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가진 것을 다 빼앗아야만 합니다.
그런 아들이 리비를 가만히 둘리 없죠.
세 사람 사이에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리비는 더욱 더 윌을 감싸안게 됩니다.
9월이면 뉴욕으로 돌아가겠다는 계획도 다 접어버리고
이 시골에 영원히 눌러앉겠다는 계획도 세웁니다.
하지만 인생이 지 마음 먹은대로 흘러가 주던가요?
사랑하는 딸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하버드 대학에 편입을 허락받은 겁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왜 엄마가 나를 도와줘야하는지 조목 조목 설득시킵니다.
리비는 이제 자신의 인생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면으로 들여다보고 결정을 내려야만 합니다.
일장춘몽...
봄비...
그 비만 내리면 생각나는 단 한 사람...
영화의 엔딩,
손주의 손을 잡고 뉴욕의 시내를 거니는 리비
그녀의 머리 위로 봄비가 떨어집니다.
그리고 미셀 디즈의 주제가 <봄비 속을 거닐어>가 흐릅니다.
리비는 영원히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그 산속에서 기다리겠다던
윌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립니다.
번역하기 무척 힘든 영화 중의 한 편입니다.
원작자 레이텔 매덕스,Rachel Maddux의 대사들은 짜증이 날 정도로 문법이나 단어 선택에 있어 젠 체 합니다.
저런 대사를 소화한 배우들이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그냥 쉽게 할 수 있는 대사들을 등장 인물 모두가 형이상학적으로 대사를 칩니다.
국내에 개봉하지 못한 데는 다 이유가 있더군요.
이런 대사를 한국인에게 전달시키기에는 대체 어떤 문장으로 접근해야할지
참 난해했던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윌의 아들이 싸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무술지도를 이소룡이 맡았답니다.
참, 희한하고 또 희한한 사건이죠?
단순한 중년 멜로가 아닙니다.
자식관계, 부부관계, 중년의 권태, 행복, 이 모든 화두를
가이 그린 감독은 멋지게 하모니로 녹여냅니다.
[DRFA,JONATHAN]

박선향(4G/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