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09-03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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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하틀,Karl Hartl 감독
Oskar Werner ... Wolfgang Amadeus Mozart
Johanna Matz ... Annie Gottlieb
Gertrud Kückelmann ... Constanze Mozart geb. Weber
Nadja Tiller ... Aloysia Weber
1.37 : 1 screen/Color (Eastmancolor)/2.1스테레오/100분
"1956' Cannes Film Festival 황금종려상 후보"
언어/Austria
자막/한국
번역/DRFA,조학제
"1955년 모짜르트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숨겨진 걸작!"
이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가 아니라 오스트리아 영화입니다.
주인공은 헐리우드에서도 이미 연기파 배우로 입지를 굳혀가던 오스카 위너가
모짜르트 역을 연기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감독 칼 하틀은 이미 1947년에도 모짜르트 영화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칼 하틀은 모짜르트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게 되자
그때의 경험을 살려 더욱 정교한 모짜르트의 생애를 다루기로 합니다.
47년도 버전에서는 DRFA의 불멸의 히트작 <보리수>의 트랩 대령을 연기했던 Hans Holt가
모짜르트 역을 연기했죠.
55년 작에서 오스카 위너는 거의 모짜르트가 빙의된 듯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모짜르트의 마지막 몇 해를 집중적으로 다루는데
밀로스 포먼이 <아마데우스>를 만들 때 가장 많이 참조한 영화라고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모짜르트가 그의 유작 <마술피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며칠 후 그의 집에 한 남자가 찾아옵니다.
이 남자는 모짜르트에게 <레퀴엠>을 의뢰하러 왔다고 하면서
금화 50두카덴을 내어놓죠,
<아마데우스>에서는 이 남자는 살리에르가 보낸 의도된 첩자로 그려지고 있죠.
이 남자가 누구인지는 아직까지 미스테리로 남아 있습니다.
음악 역사학자들은 레퀴엠을 의뢰한 남자는
프란츠 폰 발제그 백작으로 1791년 2월 14일에 죽은
그의 아내를 위해 위촉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의뢰자를 비밀에 부친 것은 모차르트의 작품을
자신이 작곡한 것인 양 발표하기 위함이었는데,
이는 당시 아마추어로 음악을 즐기던 귀족들 사이에서
종종 있는 일이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 역시 많은 의문이 남습니다.
레퀴엠을 의뢰한 이가 단순히 프란츠 폰 발제그 백작이라면
모짜르트는 왜 그렇게 공포에 떨다가 생을 마감해야 했을까요?
1829년, 영국의 노벨로 부부가 모짜르트가 죽기 6개월 전에
그를 방문했을 때, 그때의 상황을 기록한 문헌이 있답니다.
"나는 곧 죽을거요,
누군가가 나한테 아쿠아 토파나(약효가 서서히 나타나는 독약의 일종)라도 먹인 게 분명하로.
내가 정확히 죽을 날도 계산했소.
그들이 레퀴엠을 의뢰했겠지만,
그건 나의 죽음을 위한 레퀴엠이오'
역사학자들은 이 문헌 속의 모짜르트의 현상이 정신쇠약이라고 못박았지만
사실 모든 음모론에 의해 죽어가던 많은 희생자들이
모짜르트와 같은 말을 했다는 부분은 우연의 일치 치고는 좀 거시기 하죠.
모짜르트는 자신의 정신쇠약이 레퀴엠 작곡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잠시 작곡을 접고 1791년 11월 15일에 <프리 메이슨 칸타타 K.623>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이 맑아지자 그는 레퀘엠 작곡을 재개하게 됩니다.
그가 레퀴엠 작업을 재개하자 마자 다시 극심한 공포가 그를 덮쳐
모짜르트는 얼마 후 숨을 거둡니다.
사망하기 전 모짜르트는 자신의 단짝 대본작가 로렌초 다 폰테에게 편지 한 장을 보냈는데
거기에도 자신이 얼마나 이 레퀴엠 작곡을 공포스러워 했는지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 앞에 나타나 작품의 완성을 재촉하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나이의 환상으로
나는 죽을 것만 같아...
그냥 있으면 죽을 것 같아 작곡은 하지만
아마도 마지막 때가 가까워진 것을 느껴...
삶이란 아름다운 것이지만 누구도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고
생명 또한 연장시킬 수 없어...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일 따름이야..."
칼 하틀은 이 영화에서 모짜르트에게 레퀴엠을 의뢰한 남자는
저승사자라고 표현합니다.
칼 하틀이 오랫동안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칼 하틀의 해석은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합니다.
모짜르트가 프리 메이슨으로부터 <마술피리>를 의뢰받고 수긍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같은 것이 작용했다는 것이죠.
이 영화는 두 여자가 주인공입니다.
한 사람은 그의 사랑하는 조강지처 콘스탄츠와
다른 한 사람은 유일하게 모짜르트의 음악 세계를 온전히 사랑해주었던 가수,
<신이 사랑한다>는 뜻을 가진 모짜르트의 마지막 연인 애니 고틀립에게
많은 분량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화질이 열악하기 짝이 없지만 우리는 모짜르트 전기 중에서 많은 부분의 의혹이 풀리는
아주 현실적이고 냉철한 영화 한 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족으로 Dunne 형님이 보내온 마술피리 공연이 온통 프리 메이슨의 비밀 코드로 가득 차 있다고 했는데
이 영화를 보면 그것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모짜르트에게 <마술피리>는 일종의 암호극입니다.
모짜르트 이후 어느 누구도 기악과 오페라 양쪽에서 성공한 작곡가가 없었던 것을 보면
모짜르트는 집념의 음악가임에 분명합니다.
그는 악보가 공개되지 않는 팔레스트리나의 미사곡을 듣고서 바로 채보하는가 하면
한 달에 교향곡을 몇 개나 쓰는 등 경이로운 작곡 속도 등으로 유명하죠.
당시는 이탈리아 오페라가 득세를 했기 때문에
독일계 작곡가들은 성공하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결국 모짜르트는 상위 1%의 비밀 엘리트 조직 프리 메이슨의 힘을 빌려야 했고
프리 메이슨은 모짜르트를 유럽 최고의 엔터테이너로 만들어 주었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오페라 <마술피리>는 자신에게 최고의 명예를 가져다 준 프리메이슨에게 바치는
모짜르트의 헌정사 같은 작품입니다.
실제적으로 <마술피리> 속에는 수많은 프리 메이슨 코드가 숨어 있다고 하네요.
2002년 영국의 좌파 저널리스트 폴 맥가가 쓴 ‘모차르트 혁명의 서곡’을 읽어보면
모짜르트는 <마술피리>를 만들고 굉장히 후회했다고 합니다.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선과 악의 대결을 동화처럼 그려낸 이 오페라에서
새로운 물결이 구세력을 몰아낸다는 은유로 가득 차 있죠.
모짜르트는 프리 메이슨이 단순히 상위 1%의 엘리트 집단이 아니라
영적으로 세상을 완전히 전복시키려는 야망을 가진 집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짜르트의 마지막 몇 년은 이상하리 만큼 너무도 쉽게 몰락해버립니다.
잘츠부르크 대주교와는 불화를 일으키고
상위 1% 집단에게는 쫓겨나고 마지막으로 그의 최고의 후원자였던
대중들마저도 그를 외면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는 가난속에 비석도 없이 묻히고 맙니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이 단 1년 만에 가능했을까요?
이 갑작스런 몰락을 밀로스 포먼은 살리에르의 질투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지만
거기에는 너무 많은 모순이 도사리고 있죠.
암튼 모짜르트가 맞았군요.
모짜르트가 세상을 떠나고 프리 메이슨들은 결국
미국이라는 제국을 완성시킵니다.
렉싱톤 박물관(Museum in Lexington, MA.)에 전시된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톤의 초상화에서 워싱톤이 걸친 앞치마에서
바로 프리메이슨의 심볼이 적나라하게 공표됩니다...
제가 강의한 <요한 계시록>에 보면
위대한 예언가 클라렌스 라킨 목사님은 적그리스도는 뉴욕에서 나올 확률이
굉장히 높다고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모차르트가 묻혀있다고 추정되는 빈의 성 마르크스 묘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고 하네요.
“우리는 신의 아들을 비참한 가운데 죽게 내버려뒀다”
가장 모짜르트를 박대했던 잘츠부르크가 오늘날 모짜르트 네임 밸류 하나로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을 비판하는 문구라고 하네요.
어때요?
이상하게 참 잘 만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필름마저 찾을 수 없는
이 희귀한 고전을 2020년 추석에 만나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번역에만 수도 없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결국 조학제 제독님께서 해내시네요.
모짜르르 만큼 집요하고 존경스러운 분이십니다.
[DRFA,JONATHAN]

장원의T(2)
박예숙(5/D)
이소현(2/D)
지휴
김순희(4/D)
김인숙(6/D)
이영임(2/D)
홍재화(2/ND)
1인
조인환T(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