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는 1932년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이듬해인 33년 히틀러가 총통이 되어 유럽에 전운이 감도는 36년 폴란드 근처 레이체나우로 이사한다. 39년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아버지와 삼촌들은 전쟁에 끌려가고 온갖 고초를 겪었다.

45년 종전이 되자 동서독으로 분단된 가운데 46년 치타우 무역학교에서 속기, 타자, 부기를 배우다 47년 그림을 배우고, 51년 드레스덴 예술원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미술수업에 집중한다. 이후 주로 벽화를 그리다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자신의 미술관에 맞지 않아 61년 서독으로 망명하여 자유주의 리얼리즘으로 전환한다.

이어서 뒤셀도르프에 정착, 스튜디오를 오픈하여 포토 페인팅, 그리고 1.8m 캔버스 화폭에 벽화 추상화를 그린다. 이 벽화들은 우선 커다란 페인트 붓으로 자유롭게 바탕색을 칠하고, 스퀴지로 갖가지 페인트를 입히고, 대형 밀대로 압착하고 덧칠한 후, 칼로 긁어내며, 가는 붓으로 마무리를 거듭하면서 매우 화려한 추상화를 그린다.

또한 망명 시 가져온 가족사진, 북극 유람선 여행 시의 풍경화에, 누드화까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유리판과 스탠딩 판에도 그리면서 일종의 행위예술인 퍼포먼스 미술까지 창작하여, 전 유럽은 물론 72년 최초의 뉴욕 전시회 후 미국 순회 전시회도 자주한다. 아시아에서는 2015년 동경에서 최초 전시회 이후 몇 차례 일본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그는 화가로서 매우 다양한 창작활동과 세계 각지에서 활발한 전시활동을 했지만, 정작 동독에서는 87년 53세에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전시회를 열지만 부모님은 돌아가셔 망명 이후 이산가족 상봉을 못한 셈이다.

미술에 대한 그의 관념은 특히 추상화의 경우, “그림은 이유나 내용적 의미가 아니라 보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으며, 기타 다양한 창작활동을 통한 작품의 경우, “회화는 아름답게 그리는 미학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화가의 개인적 도덕성과 사회적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예술가의 천재성에 따른 기벽(奇癖)이 있지만, 예술가의 개인적 및 사회적 기여를 주장하면서, 차분하고 온당한 인품도 겸비했다.

매우 광범위한 미술 장르를 통한 다작가로서 자유분방하고 활발하면서도 가족에 대한 사랑, 편협하지 않는 인품, 관객에 대한 배려와 조수와 스튜디오 직원들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다.

추상화를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영화일 만큼 매우 감동적이면서도 잔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