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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고디에브르제스카,Savage Messiah,1972

by 유감독 posted Jul 0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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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러셀,Ken Russell 감독

Dorothy Tutin as Sophie Brzeska
Scott Antony as Henri Gaudier
Helen Mirren as Gosh Boyle
Lindsay Kemp

4:3 full screen/color/2.1 스테레오/97분
"1973' BAFTA Awards 여우주연상 후보"
언어/영국
자막/한국
번역/DRFA,조학제
감수/DRFA,허작가





"로댕 이후,최고의 조각가, 앙리 고디에브르제스카의 삶이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됩니다"





(Henri Gaudier-Brzeska ,4 October 1891~5 June 1915)




Orléans 근처 Saint-Jean-de-Braye에서 태어났습니다.

1910년 그는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술가가 되기 위해 런던으로 이주했죠.

파리의 Bibliothèque Sainte-Geneviève에서 열여덟의 앙리는 자신 보다 무려

나이 차가 두 배나 되는 폴란드 작가 Sophie Brzeska을 만나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거의 부부 이상으로 서로를 사랑합니다.

앙리는 그녀를 너무나 숭배해서 자신의 성에 그녀의 성 Brzeska를 합칩니다.

두 사람 사이의 성생활은 원만치 않았으며

브르제스카는 앙리를 위해 그의 성욕을 해결할 수 있는 매춘부를 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브르제스카는 앙리가 스물 네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그녀 역시 남은 생애를 앙리를 잊지 못해

거의 반송장 상태로 살다가 갔다고 하네요.

이 기간 동안의 소회를 Dr. Uhlmayr에게 보내는 앙리의 편지 속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숲과 들에 들어갈수록 나는 예술에 대한 불신이 싹트고

더러움의 땀을 흘리며 방황할수록

나는 예술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사랑하게 된다,

결국 이것은 갈망이 되어 이제는

절박한 수단이 되고 말았다"






(1912년 작 '몰락한 노동자,Fallen Workman')





앙리는 목수인 아버지에게서 영감을 받아

조각품을 손에 넣음으로써 최초의  장래의 청사진을 보게 되죠.

1912년 Jacob Epstein에게 영향을 받은 후 그는

조각이 고대 그리스의 고도로 완성되고 세련된 스타일을 추종하는 유일한 예술이며

도구의 자국이 보이는 흙 같은 수용체 위에 직접 조각을 해야 한다고 믿었죠.

앙리는 오귀스트 로댕 같은 초기 조각의 매혹을 버리고

대영 박물관과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 있는 유럽 외 미술품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필요한 재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일본 네츠케와 같은 소형 조각 장르에 집중하다가

서서히 서아프리카와 태평양 제도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1913년 유대인 예술가 Alfred Wolmark를 만나

젊은 예술가의 청동 흉상의 모델로 삼았고

둘은 가까운 친구로 지내게 됩니다.

앙리의 대부분 스케치는 중국 서예와 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자 앙리는 프랑스 군대에 입대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Neuville-St.-Vaast의 참호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다고 합니다.

어쩌면 죽기 위해 싸운 건 아닐까요?

이때 그는 좀 더 부드러운 느낌의 질서를 표현하기 위해

독일 병사에게서 빼앗은 소총울 조각하기도 했습니다.






(앙리 고디에브르제스카가 그린 풍경화)






이 영화는 유명한 전기 작가 H. S. Ede가 출간한 책 <야만의 메시아,Savage Messiah>를

앙리 고디에브르제스카 보다 더 괴팍한 감독 켄 러셀이 스크린에 옮긴 것입니다.

Ede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실제로 앙리의 전 재산을 관리했던

Sophie Brzeska가 유언 없이 세상을 떠나자

영국 재무 변호사로부터 이 두 사람의 재산을 사기 위해 법적 절차를 밟습니다.

자신의 사비를 들여  에디는 앙리의 편지 뿐만 아니라

특히 소피가 1930년에 런던 W. Heinemann社를 통해 출간한 앙리 고디에브르제스카의 전기물

<고디에브르제스카의 삶,A Life of Gaudier-Brzeska>의 저작권까지 손에 넣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에디의 책의 제목은 <야만적 메시아,Savage Messiah>라고 이름 붙여집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유일하게 앙리 고디에브르제스카의 실제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실감나는 전기물로 탄생합니다.






(극장 개봉당시 포스터)





음악을 작곡할 돈이 없어서 켄 러셀은 저작권이 없는

드뷔시로부터 알렉산드르 스크리아빈,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주옥 같은

클래식 음악을 사용합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영화의 미술을 켄 러셀 만큼 파격적인 감독 데릭 저먼이 맡았습니다.

두 사람은 켄 러셀 최고의 문제작 <악마들> 이후 최고의 미술 세트를 보여줍니다.

켄 러셀은 곧장 데릭 저먼을 <이 시대 마지막 진정한 보헤미안>이라고 불렀죠,

켄 러셀은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를 이렇게 밝혔죠.


"보통 광기의 삶을 산 예술가들의 인생은

자신의 재능을 운이 따르지 않아 펼치지 못한 사람들에게

종종 영감을 주곤 한다"






(자화상, 바보 머리,Head of an Idiot/Head of a Jew)





켄 러셀은 이 영화의 제작비를 구하지 못하자 대부분

자신의 재산을 처분해서 마련했다고 합니다.

켄 러셀의 자서전에 보면 이때의 소회가 나옵니다.

누군가가 꼭 굳이 그렇게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조각가의 삶을 다루기 위해

아까운 재산을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켄 러셀은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내가 사는 집을 은행 두 군데에서 이중으로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을 받았다.

결국 길거리에 나가 앉을 위기에 처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평생 고디에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갑부인 아버지의 사업을 물러 받아 배부른 삶을 살 수 있었던 기회와

앙리 고디에브르제스카 같은 돈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다간 예술가의 뒤를 쫓는 길,

그 두 가지가 있었는데

내 인생은 이 두 개의 욕망 가운데서 싸울 가치가 충분했다"





( MATERNITÉ)




단순히 기이한 행보의 감독이라고만 여겼는데

전기물을 읽고 나니 비로소 그가 존경 스럽네요.

러셀은 영화를 만든 후의 소회도 밝힙니다.


"결국 앙리의 삶은 열정과 땀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혁명에 관한 것이고

소위 돈흡혈귀 미술상들을 엿먹이는 삶이었다"







(이 영화로 데뷔하는 스콧 안토니)




러셀은 배우로는 영국 최고의 무대 여배우 중 한 명인 Dorothy Tutin과

이제 갓 연극 학교를 졸업한 신인 스콧 안토니에게 주연을 맡겼습니다.

스콧 안토니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러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300명의 배우가 오디션에 왔는데 나는 스콧이 망치를 들고

돌을 칠 수 있는 유일한 배우라고 생각되었다.

예술가가 된다는 건 곧 육체적인 노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차역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켄 러셀이 직접 까메오 출연한 것입니다.

소피(도로시 투틴)가 저녁 파티에서 부르는 폴란드 민요는 투탕의 곡입니다.


쉽지 않은 영화를 번역해주신 조학제 제독님께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DRFA,JONAT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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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해 프로그램을 준비하라,

관객은 반드시 알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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