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데뷔작과 유작

둘로 잘린 소녀,La fille coupee en deux,2007

by 유감독 posted Oct 0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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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로드 샤브롤,Claude Chabrol 감독

Ludivine Sagnier ... Gabrielle Aurore Deneige
Benoît Magimel ... Paul André Claude Gaudens
François Berléand ...Charles Denis dit Charles Saint-Denis
Mathilda May ...Capucine Jamet

1.85 : 1 screen/color/Dolby SR/115분
"2008' Pula Film Festival 그랑프리
2007' Venice Film Festival 특별상"

언어/France+Germany  
자막/한국
번역/DRFA,에뒤뜨+애니




"거장은 유언으로 무엇을 남기나?"



스탠리 큐브릭은 유언으로 <아이즈 와이드 셧>을 세상에 남겨 놓았죠.

행복하고 평범한 중년의 중산층 부부가 어느 날 우연히 알게된 가면 파티에 서서히 젖어 들어가면서

이 세상에 마약으로 가기 전의 쾌락이 하나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드의 성적 쾌락론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무릇 인간은 그가 아무리 우아하고 고상하고 위대하다 할지라도

허리 아래의 쾌락 앞에서는 언제든지 최하위층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참으로 우아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해 내었죠.

물론 거기에는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만의 연기가 한몫 했지만서두요.

톰 크루즈는 참으로 얄밉도록 시나리오 보는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배우죠.


조나단 유가 사랑하는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님은 유작으로

소피아 로렌과 리차드 버튼을 내세워 <여행>을 우리에게 남겨주었죠,


"사랑은 시기가 있으며 그 시기를 놓쳐버린 사랑은

남은 인생을 불발된 불꽃놀이처럼 공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생에 사랑이 한 번 찾아오면 그것을 꽉 잡아라"



라고 우리에게 던져주었죠.


자, 희대의 종잡을 수 없을 만큼의 장르 파괴자였던 끌로드 샤브롤 할배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을까요?

그가 제럴드 드 빠르유의 <벨라미.Bellamy>을 유작으로 남겨놓고

세상을 떠나던 해에 전 <유작.2>인 이 영화를 보았죠.

뭐, 평단의 평은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굉장히 강렬하게 보았던 영화입니다.

1906년 뉴욕 건축가 스탠포드 화이트가 매디슨 스퀘어 극장에서

해리 켄달 해브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죠.

미국내에서 르네상스의 부활을 부르짖었던 스탠포드 화이트의 건축들은

그야 말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던 즈음이었죠.

놀랍게도 총을 쏜 해리 켄달 역시 당대 석탄과 철도 기업의 상속인으로 어마 어마한 재벌이었죠.

하지만 해리 켄달은 당시 유명한 패션 모델이었던 자신의 아내 애벌린 네스빗이

스탠포드 화이트와 불륜을 저지른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결국 스탠포드 화이트를 총으로 쏘고 맙니다.

이 재판은 당시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었고

수십명의 유명 변호사가 해리 켄달에게 달라붙어 집요하게 변호하면서

결국 해리 켄달은 정신쇠약을 빌미로 무죄로 풀려나게 됩니다.





(스탠포드 화이트의 건축물이 담긴 그의 전기집)






이 사건은 1955년 리차드 플레쳐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죠.

레이 밀랜드와 조앤 콜린스가 출연한 'The Girl in the Red Velvet Swing'이 그것입니다.

(조학제 제독님께서 번역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데우스의 밀로스 포먼도 이 이야기에 도전했습니다.

그 유명한 <래그 타임>도 이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죠.

개인적으로 끌로드 샤브롤이 유작으로 이 이야기를 선택했다는 건 적절했다고 봅니다.

평생을 인간의 이상 심리를 탐구해온 그로서는 아주 매력적인 소재였겠죠.

이 영화에서 패션 모델 애벌린 네스빗은 TV 방송국의 기상 예보 아나운서로 바뀝니다.

가브리엘은 리옹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으며 지역 TV 방송국에서 기상 캐스터로 일하고 있죠.

그녀는 현재 두 남자 사이에서 샌드위치 사랑을 하는데

한 사람은 최근 재벌 가문의 재산을 상속받은 폴이라는 남자입니다.

하지만 폴은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고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무례한 습성을 갖고 있죠.

또 한 사람은 프랑스 전역에서 유명한 작가입니다.

비록 찰스는 가브리엘보다 나이가 두 배나 많고 가난하지만 찰스는 가브리엘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어 갑니다.

<아이즈 와이드 샷>에서처럼 찰스는 가브리엘을 데리고 자신만이 아는 은밀한 성적 사교 클럽으로 데리고 다닙니다.

그리고 가브리엘은 이제 찰스가 내뿜는 성적 아우라에서 헤어나오질 못합니다.

이 사실을 안 단순하기 그지없는 폴은 자신만이 가브리엘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 방법은 이 끝나지 않는 악의 근원을 스스로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 믿죠.

그리고 폴은 공개적 장소에서 찰스를 총으로 쏴 죽입니다.


끌로드 샤브롤은 거듭 묻고 있죠.

사회적으로 덕망있고 많이 배운 인간이 자신의 지식으로 낮은 계급의 인간들을 가스라이팅 시켜

자신의 욕망의 부산물로 만드는 것이 나쁜 놈인가?

비록 배운 게 없어도 적어도 선과 악의 경계를 알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무력으로 그 높은 계급의 악마를 처단해 버리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더 나쁜 놈인가?

이것을 묻고 있죠.

조나단 유는 15년 전 이 영화를 보고

뇌리에서 성경 구절 한 구절이 떠오르더군요.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로마서 8:13)"



이어지는 구절의 내용은


"그러니 적당할 때 멈추어라"


입니다.


이 세상엔 찰스나 스탠포드 화이트처럼 적당할 때 욕망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죠.

필라델피아의 켄싱턴 거리를 조명하는 다큐들이 요즘 난리도 아니죠.

마약으로 뇌의 통제가 상실된 수많은 중독자들이 대낮에도 좀비처럼 걸어다니는 그 실상 앞에서

미 정부도 손을 놓고 있을 뿐이죠.

이 지구상에서 이제 마약은 인간의 법적 통제를 넘어서 버렸습니다.

이걸 알고 대처하느냐, 모르고 대처하느냐는 그 결과가 천지 차이죠.


이후 영화는 폴의 재판을 다루면서 과연 도덕의 경계선을 허문 자와

그 허문 자를 처단한 이의 죄과가 무거운가를 집요하게 파고 듭니다.

이상하게 조나단 유의 뇌리 속에는 살아가면서 왜 이 영화가

문득 문득 떠오르는지 모르겠더군요.

동시에 이 영화와 함께 늘 사도 바울의 로마서의 구절이 함께 뒤따릅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망하리니..."


기회되면 꼭 보시길 원하는 강추 영화입니다.

궁금한 건 왜 요즈음은 끌로드 샤브롤 감독님처럼 다작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인간의 속성을 건드리는 감독들이 나오질 않는 것일까요?


아래는 제가 평론가들 중에서 가장 글 잘 쓴다고 믿는

김영진 평론가의 끌로드 샤브롤 평전입니다.

제가 아끼며 보관하고 있던 글인데 여러분과

공유해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김영진 평론가의 끌로드 샤브롤평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클로드 샤브롤은 <카이에 뒤 시네마> 평론가 시절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작품세계에 관한 선구적인 연구서를 출간할 만큼 히치콕 추종자였고 고다르, 트뤼포와 함께 누벨바그 바람을 일으키며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이후에도 히치콕식의 서스펜스 스릴러를 프랑스식 스타일로 해석한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줬다. 히치콕처럼 샤브롤도 죄의식, 강박감, 살인 등의 모티브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히치콕보다 훨씬 더 어둡고 진지하게 중산층 가정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긴장과 갈등을 다룬 샤브롤의 영화는 종종 희극적인 분위기를 띠는 히치콕의 영화와 달리 비극적인 장중함을 띤다.3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고 소르본대학에서 의학과 문학을 전공한 샤브롤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평론 활동을 한 후 아내가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은 돈으로 59년 첫 장편 <미남 세르주 Le Beau Serge>를 찍었다. 평론가 시절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실제로 알아야 할 것은 4시간 안에 배울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샤브롤이 비범한 영화감독의 재능을 증명한 작품이었다. 두번째 영화 <사촌들 Les Cousins>(1959)은 어둡고 잔인한 아이러니가 넘치는 보헤미안 기질이 있는 파리 학생들의 이야기를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친밀감과 객관적인 카메라의 거리를 교묘하게 조화시키면서 기존 형식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대담한 내용을 찍는 미덕을 보여줬다. 그것은 곧 당시 유행하던 누벨바그영화의 특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샤브롤의 형식적 취향은 누벨바그 감독들 가운데 가장 보수적이었다. 이때부터 샤브롤은 꾸준히 히치콕식의 스릴러 서스펜스 문법을 프랑스 ㉫봉막?새롭게 해석한 영화를 만들었다. 샤브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중산층 인물들은 겉으로는 우아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강박감과 성적 억압에 쩔쩔매면서 종종 살인사건을 벌이는 파국으로 치닫는다.샤브롤은 60년대 후반 중상류층 가정을 배경으로 한 정교한 스릴러영화들로 전성기를 열었는데 <도살자 Le Boucher>(1969) <부정한 여인 La Femme Infid e>(1969) <붕괴 La Rupture>(1970) <야수같은 사나이 Que la B e Meure>(1971) 등이 이 시기의 영화들이다. <부정한 여인>과 <붕괴>가 상류층 가문의 이야기라면 <도살자>는 프랑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중류층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골학교에 전근온 세련된 파리지엥 엘렌과 그를 사모하는 푸줏간 주인 포폴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긴장을 다루고 있다. <도살자>는 포폴과 엘렌의 마을 산책 장면을 약 5분간의 긴 이동 화면으로 보여주며 시작하는 우아한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포폴이 마을의 연쇄살인범이었음이 밝혀지는 대단원에서 참을 수 없을 만큼 비통한 분위기로 바뀐다. 시골 남자 포폴에 대한 심리적 우월감을 은근히 즐기던 엘렌은 무의식의 본능에 시달리며 그 억압을 뚫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던 포폴을 보며 자신 속에 감춰둔 위선과 억압을 본다.그러나 샤브롤의 70년대는 시련기였다. 영화가 계속 흥행에 실패하자 샤브롤은 텔레비전 영화를 만들 정도로 궁지에 몰렸으며 <비오레트 노지에르 Violette Nozi e>(1978)로 겨우 돌파구를 찾았다. 실화에 바탕해 부모를 교살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소녀를 윤리적으로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청교도적인 도덕관을 강요했으면서도 자신들은 부도덕했던 부모 밑에서 자란 소녀가 억눌린 환경에서 유일하게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부모 살해라는 극단적인 길이었음을 섬뜩하게 보여준다. 70년대 말부터 다시 숨통을 튼 샤브롤은 제작자 마랭 카미츠와 짝을 이뤄 히치콕식 스릴러영화를 꾸준히 찍었으며 90년대 이후에는 거장의 완숙한 경지를 선보였고 <지옥 L’Enfer>(1994) <의식 La Ceremonie>(1995) 등 여전히 주제의식과 형식감각이 예리한 작품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초기작부터 만년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샤브롤은 히치콕의 정신적 제자로 출발했지만 스승과는 다른 그 무엇을 추구해 독자적인 일가를 이룬 거장의 지위에 올라섰다.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향을 받은 영화감독은 헤아릴 수 없다. 히치콕의 영화적 핏줄을 이어받은 감독 중 누가 제일 수제자일까. (드레스트 투 킬) 과 (미션 임파서블)을 만든 미국의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자랑스럽게 먼저 손을 들 것이다. 드 팔마는 굉장한 테크니션이고 가끔 걸작을 만드 는 감독임에는 틀림없지만 어떤 때는 좀 심하게 히치콕을 모방했다는 혐 의가 있다. 그러니 일단 탈락. 드 팔마가 그러할진대 고만고만하게 히치 콕을 추종하는 다른 조무래기 감독들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 히치콕의법통을 현대적으로 이어받은 감독은 과연 누구일까. 진짜 후계자는 바로 프랑스의 클로드 샤브롤 감독.샤브롤은 57년 에릭 로메르와 함께 히치콕에 관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 서를 출간했다. 샤브롤이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로 활동하던 시절 이었다. 이 책은 가톨릭적 관점에 따라 히치콕의 영화가 도덕적 진공상태에 빠진 현대사회를 스릴러 서스펜스의 어법으로 공격했다는 날카로운 해석력을 보여줘 평판이 좋았다. 프랑스식의 유연한 스타일로 찍었지만 50 년대 말부터 샤브롤이 자기 진가를 보여준 영화는 그래서 흔히 히치콕의 영화와 비교된다. 히치콕처럼 샤브롤도 죄의식, 강박관념, 살인 등의 모 티브에 흥미가 많았다. 히치콕식 서스펜스영화를 프랑스식 스타일로 담는다면 어떨까. 그게 바로 클로드 샤브롤의 영화다.58년 샤브롤은 아내가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은 돈으로 첫 장편영화를 찍 었다. 영화 제목은 (미남 세르주). 시골을 배경으로 한 흑백영화인데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실제로 알아야 할 건 4시간에 배울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평론가 샤브롤이 영화감독의 능력이 이만큼 있다는 걸 만천하에 과시한 작품이었다. 장 뤼크 고다르와 프랑수아 트뤼포가 프랑스 영화계에 선풍을 일으키며 "누벨 바그"라는 말을 유행시키기 직전에 샤브롤은 누벨바그 영화의 끝내주는 예고편을 찍은 것.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고감독의 상상력에 따라 영화의 내용과 형식을 얼마나 독창적으로 찍을 수 있는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다음해 샤브롤은 어둡고 잔인한 아이러니로 넘쳐나는 영화 (사촌들)을 발표했다. 보헤미안 기질이 있는 파리 학생들의 퇴폐적인 얘기를 찍은 이 영화는 옆에서 찍은 듯한 친밀감을 주면서도 리얼리즘 영화의 객관성을 놓치지 않고 기존 형식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대담한 내용을 찍은 미덕을 보여줬다. 그건 곧 당시 유행하던 누벨바그 영화의 특징이기도 했다. (사촌들)이 흥행하자 샤브롤은 AJYM이란 영화사를 차리고 에릭 로메르, 필립 드 브로카, 자크 리베트 등의 동료들을 영화감독으로 데뷔시켰다. 감독과 제작자 일을 같이 해낼 만큼 위세를 얻은 샤브롤은 고다르, 트뤼 포와 더불어 "누벨바그 3인방"으로 불렸다.그러나 샤브롤은 고다르나 트뤼포와 달랐다. 3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 나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고 소르본대학에서 의학과 문학을 전공한 샤브롤은 초등학교 졸업에 부모의 구박을 받고 자라난 트뤼포나 대학을 중퇴하 고 제 멋에 겨워 산 고다르와는 출신이나 기질이 모두 판이했다. 샤브롤 의 형식적 취향은 세 사람 중 가장 보수적이었던 편. 특히 히치콕 식의 스릴러 서스펜스 문법을 프랑스식 감성으로 새롭게 해석한 영화를 잘 만 들었다. 특히 샤브롤은 중상류층 사람들의 안정된 가정에서 일어나는 얘 기에 관심이 많았다. 샤브롤 영화의 주인공들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 만 속으로는 강박감과 성적 억압에 쩔쩔 매면서 종종 살인사건을 벌이는 파국으로 치닫는다.60년대 중반 적당히 상업영화도 만들고 실패도 경험하면서 다른 누벨바그감독에 비해 뒷심이 부족한 것 같은 인상을 줬던 샤브롤은 60년대 후반 중상류층 집안을 배경으로 한 정교한 스릴러 영화로 자신의 황금기를 열 었다. 68년 작품 (도살자), 69년 작품 (부정한 여인), 70년 작품 (붕괴),71년 작품 (야수같은 사나이) 등이 이 황금기에 샤브롤이 내놓은 주옥같은 영화들. 딱히 스릴러 영화라고만 할 수는 없으나 샤브롤이 강박감을 다루는 데는 가히 거장이라는 데 딴 말을 할 수 없게 만든다.(부정한 여인)과 (붕괴)가 상류층 가문의 얘기라면 (도살자)는 프랑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중류층 사람들의 얘기. 푸줏간을 하는 뽀뽈과 우아한 여선생 엘렌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옷맵시와 행동거지가 세련된 파리지엔의 분위기를 폴폴 풍기는 엘렌은 자기가선생으로 부임한 시골마을의 사람들을 무의식적으로 무시하고 그들보다 심리적으로 우위에 있으려고 한다. 뽀뽈은 엘렌을 은근히 사모하지만 우 아하기 그지없는 엘렌의 태도에 기가 질려 자기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샤브롤은 두 사람의 은근한 신경전으로 영화를 끌고 가는데 별다른 사건 이 없으면서도 시종 긴장감을 배어나게 하는 연출이 기가 막히다. 그건 바로 카메라 움직임과 편집에 도가 통한 샤브롤의 솜씨 때문.영화 초반부. 뽀뽈과 엘렌이 동네 사람의 피로연에 참석하고 함께 귀가하는 장면은 영화사에 남는 명장면이다. 샤브롤은 카메라를 크레인에 실어 화면을 편집하지 않고 이 장면의 처음부터 끝까지 뽀뽈과 엘렌의 발걸음 을 쫓는다. 계급과 처지가 다른 두 사람은 힘겹게 대화를 이어간다. 우아한 파리지엔 엘렌에 대한 열패감 때문에 뽀뽈은 은근히 신경전을 치르는 듯이 보이지만 엘렌은 그까짓 것 알 바 아니라는 식이다. 엘렌은 자기가 마을사람들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생각에 우쭐해서 그 상황을 즐기고 있다. 두 사람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쫓아가면서 샤브롤은 마을 곳곳의 지리를친절하게 보여준다. 교회의 위치, 큰 길가, 전쟁기념관, 학교, 그 학교 위에 있는 엘렌의 집 등. 이 장면이 끝나면 관객은 그 마을의 지정학적 위치가 훤히 보이는 것 같고 이제부터 벌어질 엘렌과 뽀뽈의 심리전을 지켜볼 기대에 가슴이 부푼다.영화 종반. 마을에서 연달아 벌어진 살인사건의 범인이 뽀뽈이었다는 걸 엘렌이 아는 순간 영화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긴장감으로 관객을 짓누른다. 수줍은 남자처럼 보였던 뽀뽈이 사실은 야수 같은 인간이었다는 뻔한얘기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영화는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 고기를 먹기 위해 살생을 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부르주아들은 욕망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보다는 욕망을 감추고 다른 방식으로 치장하는 데 능 하다. 세련된 파리지엔 엘렌은 그 방면의 선수였다. 그래서 마지막에 부 상을 당한 뽀뽈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차 안에서 엘렌이 자기에 대한 뽀뽈의 사랑고백을 들었을 때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 무의식의 본능에시달리며 그 억압을 뚫기 위한 살인을 저질렀던 뽀뽈을 보며 엘렌은 자기자신 속에 감춰둔 위선과 억압을 본다.샤브롤은 부르주아들의 우아한 형식적 태도는 인습 밑에다 열정의 힘을 숨기고 억누르고 부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날카롭게 꼬집었다. 그날밤 엘렌은 강둑을 거닐며 혹시 자기가 뽀뽈의 살인행위에 간접적으로가담한 건 아닌가라는 자책에 시달린다. 엘렌은 뽀뽈의 간절한 욕망을 우아한 척하면서 물리친 자신의 위선과 처음으로 대면했다. 이 영화의 진짜"도살자"는 뽀뽈이 아닌 엘렌, 엘렌이 몸에 붙이고 사는 부르주아의 인습이라는 것.그러나 황금기가 지나가자 샤브롤에게 시련이 왔다. 70년대의 샤브롤은 영화가 계속 흥행에 실패하자 한때 텔레비전 영화를 만들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 샤브롤이 돌파구를 찾은 건 78년에 만든 (비오레트 노지에르). 33년 부모를 살해한 소녀의 실제 사건을 영화로 만든 이 영화는 청교도적 인 도덕관을 강요당했으면서도 아주 건강하지 못하고 무도덕한 가정에서 자라며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했던 한 소녀의 얘기. 소녀는부모를 교살한 혐의로 체포되지만 법정에서도 전혀 참회의 기색을 보이지않는다. 부모가 벌이는 정사의 신음소리와 교회의 종탑소리와 시계추 소 리를 같이 들으며 고통스러워 했던 답답한 환경에서 소녀가 탈출하는 방 법은 그것밖에 없었던 것. 샤브롤은 조금도 가감하지 않고 판단도 내리지않고 소녀의 행위와 환경을 정확하게 묘사했다. 그래서 좀처럼 보기 드문끔찍한 사실주의 영화가 나온 것.70년대 말부터 다시 숨통을 튼 샤브롤은 84년부터 87년까지 제작자 마랭 카미츠와 짝을 이뤄 히치콕식 스릴러 영화를 꾸준히 찍었다. 샤브롤의 자리는 이제 난공불락. 고다르처럼 항상 앞서가는 영화를 찍은 건 아니었지만 주로 스릴러영화 장르에서 일가를 이룬 것. 샤브롤은 90년대에 들어서도 가장 안정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94년 작품 (지옥)과 95년에 만든 (의식)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눈이 밝은 샤브롤의 수작이라는 평가를 들었다.샤브롤이 자기 영화인생에 항상 만족한 것 같지는 않다. 언젠가 샤브롤은영화 속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사람들은 왜 내게 뭐라 불평하는거지? 언제는 "스릴러 영화를 보여달라"고 했다가 이제는 왜 "스릴러 영화만찍는 거지?"라고 하는거야"라고 말했다. 샤브롤이 스릴러 영화만을 찍 은 건 아니다. 그러나 그쪽에 특히 재능이 있었던 건 틀림없다. 히치콕의후계자라고 했지만 샤브롤 영화의 형식미는 영화역사에서 드물게 보는 것이다. 샤브롤은 인생과 도덕의 의미를 골리앗족 특유의 섬세한 눈으로 살펴본 대단한 형식주의였던 것.[김영진]






[DRFA,JONAT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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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해 프로그램을 준비하라,

관객은 반드시 알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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