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드미트릭,Edward Dmytryk 감독
Montgomery Clift ... John Wickliff Shawnessy
Elizabeth Taylor ... Susanna Drake Shawnessy
Eva Marie Saint ... Nell Gaither
Nigel Patrick ... Prof. Jerusalem Webster Stiles
2.35 : 1 screen/Color (Technicolor)/4-Track Stereo (Westrex Recording System) (70 mm prints/USA: 168 min (original version)
"1958' Academy Awards, USA 여우주연상,미술상,의상상,음악상 후보
1958' Golden Globes, USA 남우조연상 후보
1958' Laurel Awards 여우주연상 수상
2002' AFI 선정 <미국영화 사상 최고의 러브스토리 100선>에 선정"
언어/미국
자막/한국
번역/DRFA,그레이스
"상영시간 3시간, 엘리자베스 테일러 미모 역사상 가장 만개했던 영화"
이 영화는 19세기 중엽, 미국 동북부의 인디애나주 레인트리(Raintree)라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한 여자의 끝장나는 집착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대서사로 풀어낸 영화죠.
MGM은 이 영화를 대규모 남북전쟁 서사시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연장선에 놓고 기획했지만
촬영 도중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로
영화는 그때부터 엄청난 악재에 시달리다 결국 MGM의 재정을 휘청거리게 만들 정도로 손실을 입힙니다.
이 영화의 불운의 전조는 원작자 로스 록리지 주니어가 1948년 이 소설을 발표했는데
그는 오랫동안 가난한 작가로 살다가 하루 아침에 주체할 수 없는 돈방석에 앉자
<나는 이 거대한 성공을 버틸 재간이 없다>라는 유서를 써놓고 자살하면서부터였죠.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연기 역사상 처음으로 집착과 광기에 사로잡힌 수잔나 역을 연기해
그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습니다.
비록 <이브의 세 얼굴>에서 열연한 조안 우드워드에게 트로피는 내어주었지만서두요.
하지만 최고의 영화 수입업자들이 뽑는 로렐상에서는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죠.
어린 시절 흑인 여자와 바람을 피던 아버지를 엄마가 응징하던 과정에서
집에는 불이 나고 부모님 모두 화재로 잃어버린 수잔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흑인 여자를 끔찍히도 싫어합니다.
그리고 특히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손에 넣고
호흡조차 자신이 관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끔찍한 여자로 성장하죠.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너무도 아름답게 나오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허리 18인치 의상을 억지로 끼어 입다가 촬영장에서
엘리자베스가 혼절한 일화도 유명하죠.
동시에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을 지루해 하고 그 사랑을 매몰차게 버리는 편집증을 연기하는 그녀가
섬뜩하면서도 안타깝게 여겨지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런 수잔나의 집착에 한 연인 커플이 희생당합니다.
학교 동창인 존(몽고메리 클리프트)과 닐(에바마리 세인트)은 서로 사랑하고
닐은 남은 인생을 존과 보낼 것이다 라고 믿고 있는 사랑스런 커플이죠.
그녀 수잔나가 등장하기 전까지는요.
존과 닐을 보는 순간 두 사람의 사랑을 질투한 수잔나는 온갖 방법으로 존에게 접근해서는
결국 마을에 존의 아이를 가졌다고 거짓말을 해서
존과의 결혼에 골인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두 사람의 결혼식 후죠.
수잔나의 집착은 이제 의부증으로 돌변합니다.
수잔나는 존의 사소한 행동까지도 의미를 부여하며 하루 24시간을 존의 피를 말려갑니다.
동시에 수잔나는 노예 해방주의자인 남편의 사상까지 불온하다며
태클을 걸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전쟁이 일어나고 두 부부는 서로 다른 사상으로
남북전쟁이라는 거대한 돌풍 속으로 휩쓸려 들어갑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이가 태어나고
과연 이들의 결혼생활은 어떻게 종결될까요?
1956년 5월 12일 저녁, 이 영화가 한참 촬영 중이던 때에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집에서 파티가 있었죠.
술에 취한 몽고메리 클리프트를 록 허드슨이 데려다 주겠다고 했지만
몽고메리는 이를 거절 스스로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전 세계적인 엄청난 성공 이후
몽고메리 클리프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몽고메리 클리프트는 이미 이때에 알콜 중독이 한참 진행중이었고
심지어 연출부 사이에는 그들만의 비밀 사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지아>와 <플로리다>아 <잔지바르>였는데
촬영장에 나타난 몽고메리의 취한 상태에 따라 연출부들은
"오늘은 조지아야" 이런식으로 신호를 주고 받았다고 합니다.
성경 로마서에 이런 말이 있죠.
<네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망하리라>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사고 현장)
그날 밤도 고집대로 술에 취한 채 운전대를 잡은 몽고메리는 대형 사고를 당합니다.
소식을 전해들은 엘리자베스는 록 호드슨과 같이 현장으로 달려 갑니다.
록 허드슨이 망가진 차에서 몽고메리를 끌어내었을 때
앞니빨 두 개가 몽고메리의 목에 박혀 있을 정도로 중상이었고
몽고메리는 이후 9주 동안 대수술을 몇 번에 걸쳐 받았죠.
사실 이 사고 이후로 몽고메리의 연기 인생은 종점에 접어듭니다.
그의 샤프하고 예리했던 용모는 영원히 사라졌고
이 영화의 남은 부분을 찍을 때에도 클리프트의 코와 턱이 전에 찍어놓은 분량과 상당히 달라 보이죠.
어떤 장면에서는 얼굴 왼쪽 전체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도 포착됩니다.
MGM은 찍어놓은 것을 다 뒤엎고 다시 남주를 캐스팅하자는 결단이 있었지만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록 허드슨이 강력 중개해서
남은 분량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의 감독 에드워드 드미트릭이 한번은 분장실에서 100개의 약이 담긴 각기 다른 약상자와
주사기가 가득한 몽고메리의 박스를 발견했다고 그의 회고록에 적고 있죠.
심지어 응급 상황을 고려해 경찰 1명이 항상 몽고메리의 숙소 앞을
지켰다고 합니다.
몽고메리는 이 영화 이후 6편의 영화를 더 찍고 <스파이,L'espion>를 끝으로 은막에서 물러납니다.
1957년까지 이 영화는 단일 영화로는 가장 많은 제작비가 투자된 영화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MGM의 특허 카메라 65미리 와이드 스크린으로 찍혔기 때문에
감히 블루레이로 출시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고 합니다.
컨버팅 하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하네요.
나중에 이 과정은 <울트라 파나비전 70>이란 이름으로 바뀝니다.
하지만 같은 방식으로 찍힌 <벤허>는 블루레이로 컨버팅해서 흥행에 성공을 했죠.
1956년 이 영화의 촬영을 위해 지어진 캘리포니아주 컬버시티의 제퍼슨 대로와
오버랜드 대로에 위치한 MGM의 프리헤이븐 타운은 이후 지금까지 LA의 명소가 됩니다.
첫 시사회는 1957년 1월 24일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의 그라나다 극장에서 열렸는데
최초 버전은 3시간 6분짜리였죠.
하지만 두 달 뒤 뉴욕 타임스는 이 영화의 재촬영이 시작되었다고 기사를 내었죠.
영화는 몇 장면의 재촬영과 함께 15분 가량을 잘라내는 방향으로 바뀌었죠.
세 남녀의 얽히고 섥힌 사랑이 제 자리를 찾아과는 과정을 미국의 남북전쟁이라는 거대한
카테고리와 묶으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격동의 세월 속으로
우리의 추억을 소환하는 영화입니다.
오랜만에 번역가로 돌아온 그레이스 누님의 번역작입니다.
놓치지 마세요!
[DRFA,JONAT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