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가의 삶/문학의 향기 속으로

오스카 와일드,The Trials of Oscar Wilde,1960

by 유감독 posted Jan 1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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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휴즈,Ken Hughes 감독

Peter Finch        ...        Oscar Wilde
Yvonne Mitchell        ...        Constance Wilde
James Mason        ...        Sir Edward Carson
Nigel Patrick        ...        Sir Edward Clarke

2.20 : 1 screen/Color (Technicolor)/Mono (Westrex Recording)/123분
"1961' Golden Globes, USA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1961' BAFTA Awards 최우수작품상 후보,남우주연상 수상
1961' Moscow International Film Festival 남우주연상"

언어/영국
자막/한국
번역감수/DRFA,김교수





"잊을 수 없었던  피터 핀치의 불멸의 연기"






(Ken Hughes 감독 버전의 오스카 와일드)





(Gregory Ratoff 감독 버전의 오스카 와일드입니다)




1960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오스카 와일드의 은밀한 삶에 대한 영화가 연거푸 두 편이 만들어집니다.

감독도 쟁쟁했지만 무엇보다 연기파 배우  Peter Finch와 Robert Morley가 각각

오스카 와일드를 연기해서 비평가로부터 찬사를 받아냅니다.

두 영화 모두 걸작의 반열에 올랐죠.

사람들은 왜 그렇게 타인의 다른 것에 관음적으로  함몰하는 것일까요?

그토록 천재라고 믿었던 사람의 열등한 꼭지점을 확인해야

비로소 자신의 행복감이 충만해지는 것이 인간이란 영장류죠,

위의 두 영화를 보면 <다르게 태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저주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죠.


이 영화는 제작이 거의 끝나갈 무렵까지 극장이 잡히질 않아

제작자 어빙 앨런과 앨버트 R. 브로콜리의 사이를 극도로 틀어놓았습니다.

영국의 극장들은 이 영화가 오스카 와일드의 동성애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는 소문 때문에

모두 서로의 눈치를 보며 스크린을 내어주지 않았죠.

하지만 시사회와 동시에 유럽의 수많은 극장주들이 필름을 구하기 위하여 줄을 섰으며

유럽권에서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영화의 성공을 바탕으로 앨버트 R. 브로콜리는 해리 솔츠먼과 손을 잡고

<이온 프로덕션,Eon Productions>을 설립하게 되는데

첫 작품이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였습니다.

뭐, 결과는 말씀 안드려도 알겠죠?

앨버트 R. 브로콜리는 남은 인생을 그냥 돈방석에 앉아서 살게 됩니다.

켄 휴즈 감독은 또 다른 오스카 와일드를 제작중인 Gregory Ratoff 버전 보다 앞서기 위해

대부분의 장면을 원씬 원 커트로 처리합니다.

그 유명한 배우 피터 핀치 조차도 한번 더 찍자 라는 말을 감히 못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퀸즈베리 후작(리오넬 제프리스)이 아들 알프레드 더글러스(존 프레이저)를 때리는 장면에서

존 프레이저가 자신의 리액션이 마음에 안든다며 한번만 더 찍자고 했고

켄 휴즈는 딱 한 번 허락해주었다고 합니다.


오스카 와일드 연극 단골 전문 배우 존 길거드에게 오스카 와일드 역이 돌아갈 것이라고 했지만

존 길거드가 감독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오스카 와일드를 완벽하게 표현할 배우는 피터 핀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이렇게 급조하게 찍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조나단 유가 손에 땀을 쥘 정도로 몰입해서 감상했던 이유는

역시 존 길거드의 말이 맞았습니다.

피터 핀치는 스크린 속에서 살아 숨쉬는 오스카 와일드를 그대로 표현해 냅니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1854~1900)




오스카 와일드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출생했습니다.

유명한 극작가이자 소설가, 시인으로 19세기 말 유미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죠.

젊었을 때 뛰어난 재기(才氣)와 화려한 행동으로 인하여 세간의 주목을 끌었으며,

특히 그의 작품 중 경구(驚句)로 가득한 희극은

수많은 관객들을 모으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좌담과 강연에도 능했고 사교계의 화려한 존재였습니다.

심미주의적 예술관과 인생관을 창도한 W. 페이터의  <르네상스,1873>라는 작품에서

지해한 영항을 받았고

이 책은 오스카에게 있어서 평생의 ‘황금서(黃金書)’가 되었습니다.

오스카의 문학적 명성이 일약 올라간 것은 고딕풍의 멜로 드라마이자

유일한 장편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1> 입니다.

이 책 서문에 <책에는 도덕적인 것도 부도덕적인 것도 없다. 잘 썼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문제이다>라고 적었는데

이때부터 오스카 와일드는 영국 근엄주의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연달아 발표한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살로메>,<거짓에서 나온 성실> 등이

그야 말로 19세기 영국과 유럽을 뒤흔듭니다.

하지만 그의 삶을 송두리채 무너뜨리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사건을 오늘 소개하는 영화 <오스카 와일드>에서 자세히 그려내고 있죠.










1895년 퀸즈베리 후작이 오스카 와일드가 자신의 아들을 동성애에 빠트렸다며 소송을 걸었고

이 재판은 무려 1년 간에 걸쳐 이어집니다.

결국 <막중한 풍기문란>이란 죄명으로 2년의 실형을 받은 오스카 와일드

출소 후에 영국에서 추방됩니다,

영화의 엔딩 오스카 와일드의 아내가 남편에게 프랑스에서의 생활비는 대어주겠지만

만약 한 번만 더 퀸즈베리 후작의 아들을 만날 시에는

모든 지원금은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하는 대목이 나오죠.

실제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스카 와일드는  아내의 경고를 무시하고 알프레드 더글러스와 제 3국으로의 망명을 시도하다가

아내에게 발각되어 그의 말년은 거의 노숙자처럼 떠돌다

프랑스 파리에서 1900년에 생을 마감합니다.


우리는 왜 이런 예술 영화를 봐야 할까요?

조나단 유는 거듭 거듭 수많은 리뷰에서 언급했지만

인간의 자신의 삶에 가장 솔직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자신이 자신의 본질을 사랑하지 못하면

그때부터 세상과 악마가 자신의 모든 것을 유영하며 가로채려 하죠,

오스카 와일드가 좀 더 솔직하게 가족과 아내, 그리고 세상 앞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낼 용기가 있었다면

그가 그렇게 참혹한 삶을 마감했을까요?

오늘 날도 수많은 오스카 와일드가 존재합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스스로 단죄하고

수많은 헝겁으로 꽁꽁 싸매어놓은 채 평생을 살아가는

오스카 와일드들이 수두룩 하죠.


정말이지 간만에 만나는 연기부터 각본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던

영화였습니다.



[DRFA,JONAT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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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해 프로그램을 준비하라,

관객은 반드시 알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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