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쿠커,George Cukor 감독
Katharine Hepburn ... Jo
Joan Bennett ... Amy
Paul Lukas ... Prof. Bhaer
Edna May Oliver ... Aunt March
1.37 : 1 screen/흑백/2.0 모노/115분
"1934' Academy Awards, USA 최우수작품상,감독상 후보,각본상 수상
1933' National Board of Review, USA 올 해의 탑 텐 영화
1934' Photoplay Awards 그랑프리
1934' Venice Film Festival 황금사자상 후보,여우주연상 수상(케서린 햅번)"
언어/미국
자막/한국
번역/DRFA,에뒤뜨
"수도 없는 <작은 아씨들> 가운데 최고의 박스 오피스를 기록한 전설의 영화!"
1933년 11월 16일 라디오 시티 뮤직 홀에서 개봉되었습니다.
이 날은 지난 50년 동안 가장 추운 영하 30도를 기록했다는 언론의 대대적인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23,073명의 관객이 극장으로 모여 들었고
라디오 시티 뮤직 홀 역사상 가장 높은 개봉 스코어를 기록했습니다.
이 여파는 계속 이어졌고 개봉 첫 주 만에만 1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습니다.
영화는 다시 RKO의 센터 시어터로 옮겨졌는데 이미 이때까지의 스코어만 451,801명이 넘어섰죠.
대공황 시대의 관객들은 좀 더 단순하고 순수한 세상을 동경했고
영화가 이 어려운 시대의 삶의 환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증명을 등에 업고
미국과 캐나다에서 139만 7천 달러를, 다른 나라에서 66만 3천 달러를 벌어들였죠.
마침내 최종 수익 $849,000로 1933년 미국 박스 오피스 탑 텐에 오릅니다.
특히 개봉과 동시에 비평가들로부터 압도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
뉴욕 타임스의 모던트 홀은 <조지 쿠커는 매력적인 사건들을 우리 이웃의 이야기처럼 풀어내었다.
이 연대기에 영웅이나 심지어 악당이 없이도 영화는 흥미진진하다.
사람들로 하여금 옛 시대의 인간적인 순수성을 동경하게 만들며
영화는 부드러운 방식으로 시작하여 관객들의 마음속에 남을 행복한 결말을 돕기 위한
어떠한 강제적인 시도도 없이 리드미컬하게 나아간다>
고 극찬했습니다.
버라이어티紙는 <스토리는 위엄 있고 움직임이 느리지만 늘 유쾌한 분위기를 주는 이 아이러니함은 무엇인가?>
라고 했죠.
더 뉴요커의 존 모셔는 <놀라운 승리>라고 압축했고
<우리가 앞으로 오랫동안 볼 수 있는 다른 어떤 영화보다 더 강렬하고,
더 많은 느낌으로 완성되었다>며 극찬 또 극찬했습니다.
뉴욕 월드 텔레그램은 <캐서린 햅번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으며,
그녀가 얼마나 무한하고 자유로운 배우인지를 확실히 증명해주고 있다>고 했죠.
TV Guide는 <부끄럽지 않게 감상적이며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 제작의 한 예>라고 하며
별 4개 만점을 주었습니다.
영화는 남북 전쟁으로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는 네 자매의 성장담을 때로는 절망적으로
때로는 그것을 극복하는 찬란함으로 그려낸 루이자 메이 올컷의 위대한 문학을 원작으로 하고 있죠.
온화한 장녀 메그, 작가가 꿈인 활달하고 씩씩한 조,
내성적인 베스와 야무진 막내 에이미 네 자매를 축으로
당시 전쟁에 휩쓸린 미국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하는지를
우아한 필체로 그려낸 영원한 고전이죠.
놀라운 사실은 이 원작은 수도 없이 리메이크 되었지만 그때마다
영화는 평균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합니다.
조 역의 캐서린 햅번은 의상 디자이너 월터 플런켓에게 자신의 외할머니가 입던 옷을 갖고 와서
똑 같이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네요.
캐서린 헵번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 영화를 자신이 연기한 최고의 영화라고 했죠.
동시에 조지 쿠커 감독을 자신이 작업한 감독 중 최고의 감독으로 꼽았습니다.
이 둘은 마지막 순간까지 같이 했죠.
두 사람의 <우리의 사랑은 흘러 갔지만>과 <옥수수는 푸르다>는 꼭 보셔야 합니다.
올린 하울랜드은 1933년과 1949년에 에이미의 학교 선생님 역을 연기합니다.
데이비드 셀즈닉은 이 영화의 성공으로 마침내 그토록 꿈에 그리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제작할 수 있게 됩니다.
셀즈닉이 <작은 아씨들>을 제작하던 당시에 10에 9는 모두 이 영화가 망할 것이라고 했다고 하네요.
셀즈닉은 이 영화의 엄청난 성공으로 자신의 제작사인 <셀즈닉 인터내셔널 픽처스>를 만들 수 있었죠.
창립 작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단 한 편으로
그는 남은 인생 전부를 평생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돈을 끌어 모았죠.
<작은 아씨들>은 100만 달러로 예산이 책정되었고
4,000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로마 바티칸이 선정한 <영화 역사상 45편의 위대한 영화>에 선정되었습니다.
완벽한 힐링을 원하세요?
모처럼 가족의 손을 잡고 동검도로 놀러오세요.
이 영화가 상영될 즈음에 끔찍한 추위는 물러가고 이제 조금씩 봄기운이 섬을 휘감겠군요.
[DRFA,JONAT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