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듄네,Philip Dunne 감독
Gary Cooper ... Joseph B. 'Joe' Chapin
Diane Varsi ... Ann Chapin
Suzy Parker ... Kate Drummond
Geraldine Fitzgerald ... Edith Chapin
2.35 : 1 screen/흑백/Mono (Westrex Recording System)/102분
"1958' Locarn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황금표범상
1959' Golden Globes, USA 신인배우상 후보"
언어/USA
자막/한국
번역/DRFA,조학제
"<조나단 유, 내 인생의 영화 27위> 낡은 서랍 속에서 꺼내어 본 아버지의 비밀 일기"
감상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약이 오른다는 거였습니다.
우리가 보릿고개를 넘느라 허덕이던 50년대에 미국은 이미 냉혹하게
자본주의의 부가 안겨다 줄 가장의 무거운 짐에 대해 이토록 심도 있게 고민해 보고 있었다니...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게리 쿠퍼가 연기하는 조셉 채핀이라는 남자의 장례식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조셉 채핀이 얼마나 대단한 삶을 살았기에 남자의 장례식에는 백악관의 화환으로부터
주지사의 조문 행렬, 그리고 각종 언론에서 앞다투어 장례식 풍경을 생중계합니다.
하지만 5분도 지나지 않아, 조문객들의 수군거림을 통해
조셉 채핀이 최근 5년간, 알콜 중독으로 고독하게 죽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조셉 채핀은 정치적 입문도 하지 못하고 문턱에 걸려
그냥 낙오한 정치 낙오생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대한 장례식은 순전히 대인관계를 최우선시 하는 그의 아내의 연줄 때문이며
조셉 채핀은 그저 그런 삶을 살다간 평범한 남자임을
자식들의 대화를 통해 관객들은 알게 되죠.
프레드릭 북쪽 10번가의 자수성가한 집안에서 태어난 조셉 채핀
그의 인생이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난 것은 앞서 언급했지만
애정없는 결혼 때문이었겠죠.
아내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정도로 오로지 외부에 비치는 가정의 실루엣이 전부인 여자입니다.
그 껍데기 뿐인 가정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여자입니다.
아내는 조셉 채핀이 그토록 내키지 않아 하는 주지사 출마에 남편을 강제로 내어보내죠.
그리고 평소 자신의 정치 후원금을 받은 이들을 동원해서
남편을 유력 후보에 올려놓는데까지 성공합니다.
하지만 비극은 어느 날 하나뿐인 아들이 하버드 대학 법대를 자퇴하고
줄리어드 음대를 가겠다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됩니다.
지금은 유명 대학이지만 당시에서는 줄리어드 음대를 보는 고위층의 시선이 이 영화에 잘 드러나 있죠.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신들의 인맥을 동원해서 아들 조비를 예일대 법대에 편입 시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딸 앤이 문제입니다.
앤은 전도유망한 남자친구와 같이 간 나이트 클럽에서
무대 위에서 트럼펫을 부는 남자에게 반하고 말죠,
그리고 앤은 그 남자와 야반도주 해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보내버립니다.
순진한 앤은 먼저 일을 저지르고 나면 부모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라 믿었던 거죠.
그건 앤의 오산이었습니다.
앤의 어머니는 앤에게 태아가 자리잡기도 전에
배속에 든 아이를 낙태 수술을 시켜버리고
조셉 채핀은 앤의 남편을 돈으로 매수합니다.
그때 아버지는 사위에게 잔인한 말을 하죠,
"네가 정말 앤을 사랑한다면 지금 이 수표를 내 눈 앞에서 찢어봐"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비밀의 연정'이란 제목으로 개봉되어 많은 중년남자들을 홀릭시켰다)
그렇게 처참하게 무너진 첫사랑의 꿈 앞에서 앤은 절규하면서
뉴욕으로 홀로서기를 선언하고 떠나버립니다.
어디를 가나 딸의 과거가 화두에 오르는 정치판에서 환멸을 느낀 아버지는
친구 주지사에게 주먹을 날리고 영원히 정치판과 굿바이 합니다,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딸이 보고싶어 찾아간 뉴욕 딸의 하숙집에서
대문을 여는 딸의 친구 케이트를 보는 순간 조셉 채핀은 심장이 얼어붙습니다.
정확이 말하면 얼어붙은 것이 아니라, 영원히 뛰지 않을 것 같았던 심장이
다시 요동침을 느꼈던 것이죠.
이런 것을 두고 소울 메이트라고 하는 것일까요?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밤을 새워 대화를 나누고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 케이트 역시
처음 찾아온 이 낯선 사랑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조셉 채핀은 그 날 이후, 자신의 삶을 새로 시작하려 합니다.
아내와 이혼 소송을 준비하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해서
케이트에게 줄 루비 목걸이를 만들죠.
그리고 케이트에게 청혼을 하고 두 사람은 축하하기 위해 어느 바에 들릅니다.
춤을 추고 돌아서는데 조셉 채핀은 한 남자의 발에 걸려 힘없이 넘어집니다.
남자는 케이트의 친구들...
케이트의 친구들은 당혹해 하며 조셉 채핀을 일으켜 세우지만
조셉 채핀은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돌아옵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그는 비로소 더 늦기 전에 돌아가야 할 곳이 자신의 가정임을 깨닫게 되죠.
그렇게 돌아온 프레드릭 북쪽 10번가의 집...
그곳에서 조셉 채핀은 이루지 못한 사랑과 떠나버린 자식들을 생각하며
술에 의지한 채 조금씩 죽어갑니다.
(John O'Hara,1905~1970)
펜실베이니아주(州)에서 출생한 존 오하라는 타임지의 기자로 활동했죠.
기자 출신의 기질 답게 그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나는 8번 아가씨,Butterfield 8>와
프랭크 시나트라의 <팔 조이> 등, 주로 하드보일 풍의 다이얼로그로 유명합니다.
<비밀의 연정>에서도 영화의 엔딩 조셉 채핀의 아들 조비가 장례식장에서 어머니에게 퍼붇는 독설은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들에겐 필견의 문장들도 가득차 있습니다.
특히 존 오하라는 <비밀의 연정,Ten North Frederick>으로 1955년
National Book Award를 수상하게 됩니다.
1970년 뉴저지에서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했으며 프린스턴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그의 묘지에는 평소 존 오하라, 자신이 준비한 비문이 적혀 있습니다.
"여기에 묻힌 남자는 어느 누구보다
자신의 시간을 진실을 다루는데 쏟아부었다.
그 분야에서는 그는 전문가였고 정직하게 잘 썼다:
존 오하라의 이 묘비명은 <비밀의 연정>을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갑니다.
케이트 역을 맡은 Suzy Parker의 자서선을 보면
이 영화를 찍는 내내 게리 쿠퍼가 촬영장에서 케리 그란트의 뒷담화를 심하게 했다고 하네요.
수지 파커가 왜 그토록 케리 그란트가 미우냐고 물었더니
목소리부터 발끝까지 버터 기름이 흐른다고 말했다고 하네요.
원래 조셉 채핀 역으로는 스펜시 트레이시가 내정되어 있었지만
수지 파커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으로 철회되었다고 합니다.
게리 쿠퍼는 촬영 내내 자신 역시 조셉 채핀 역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불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나단 유가 보기엔 아마도 조셉 채핀을 다른 사람이 연기했다면
이토록 가슴 저미는 여운을 남겨줄 수 있었을까요?
앤을 연기한 Diane Varsi가 실제로 이 영화를 촬영할 당시 정신착란을 일으켜
잠시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존 오하라의 원작에서는 앤이 중절수술을 받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심의 때문에 영화에서는 자연 낙태로 묘사됩니다.
<비밀의 연정>은 시대를 앞서간 뛰어난 플롯으로
우리가 문득 낡은 서랍 속에서 아버지의 비밀 일기를 발견했을 때의 설레임을 주는 영화입니다.
일기의 첫장을 넘길 때의 가벼운 떨림...
그토록 완벽하고 그토록 근엄하던 아버지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런 야릇하고 슬픈 설레임을
체험하게 해준 멋진 영화였습니다.
[DRFA,JONAT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