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렌스 브라운,Clarence Brown 감독
Katharine Hepburn...Clara Wieck Schumann
Paul Henreid...Robert Schumann
Robert Walker...Johannes Brahms
Henry Daniell...Franz Liszt
Leo G. Carroll...Prof. Wieck
1.35:1 full screen/흑백/1.0 돌비 디지틀/115분
언어/미국
자막/한국
번역/DRFA,현주
"
흔히 사랑은 변한다고 하지만
클라라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슈만은 그의 나이 열여덟, 1828년
어머니의 권고로 라이프치히 대학의 법학과에 입학했죠.
그러나 그는 애초부터 법학에는 관심이 없었고
대학에서는 문학 강의만 들었고,
집에서는 피아노만 두들겨댔습니다.
그러다가 그 해 8월, 그는 라이프치히에서 가장 유명한 피아노 교사
프리드리히 비크(Friedrich Wiek)를 찾아가 제자로 받아달라고 했습니다.
슈만이 아버지의 제자가 되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오던 그때
비크 교수의 딸 클라라는 고작 아홉 살의 소녀였죠.
클라라는 슈만을 보는 순간 어떤 거대한 운명을 보았을 것입니다.
슈만은 열여덟의 나이에도 주변에 여자가 끊이질 않았다고 합니다.
"음악은 나에게 있어 영혼의 완벽한 표현 수단이다.
이제 나는 나의 음악을 그칠수 없다.
마치 나이팅게일처럼,
나는 죽을 때까지 나의 노래를 계속해서 부를 것이다."
슈만은 피아노를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단시일에 기교적인 장벽을 극복해 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기 위해 한 손가락을 고정시킨 채 나머지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는 기구를 고안해서
운지법의 숙달을 꾀했지만,
그것이 화근이 되어 손가락에 고장이 생겨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꿈을 버리고
작곡에 전념하게 됩니다.
클라라는 이런 슈만의 핸디캡을 알았기에
그녀는 자신이 커서 어른이 되면 슈만의 곡을 연주해서 세상에 알리겠다는 꿈을 꾸었을 겁니다.
영화 <애수의 트로이메라이>에서는 슈만과 결혼하기 위해 아버지와 법정 투쟁을 벌이는
클라라를 연기하는 나스타샤 킨스키의 고혹적인 모습과 연주가 전편을 수놓습니다.
나스타샤 킨스키는 클라라 역을 연기하기 위해
1947년에 만들어진 클라렌스 브라운 감독의 <슈만과 클라라>를 수도 없이 보았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서 실제 슈만의 곡들을 연주하는 캐서린 햅번의 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래서 킨스키는 무조건 캐서린 햅번을 능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고 하네요.
마침내 법정의 중재로 슈만과 클라라가 결혼한 것은 1840년,
클라라가 21세, 슈만이 30세 때 일입니다.
이 영화는 <애수의 트로이메라이>의 연장선에 있죠.
결혼 후 가난이 두 음악가를 덮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친구 브람스가 간간히 와서 도와주지만 가난하기는 세 사람 모두가 한결 같습니다.
어려운 결혼을 성사시킨 슈만은 결혼한 그 해에만
무려 1백곡이 넘는 가곡을 작곡합니다.
1840년은 흔히 슈만에게 있어 '가곡의 해' 로 불리기도 하죠.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클라라의 헌신적인 내조는 그것이 비록 가공되었다 할지라도
관객의 가슴을 통렬히 움직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한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정신 분열증으로 시달리는 남편의 자리에 수시로 끼어드는 브람스의 유혹,
그 유혹에도 한결같이 웃음과 재치로 넘기는 클라라를 보면서
예술가에게 있어 지극한 부부애란
창조력의 중화작용과 약화라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말도
클라라에게만은 아무 의미 없게 만들어버립니다.
클라라는 남편이 무대 위에서 쓰러지는 순간에도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클라라는 홀로
전국을 돌며 남편의 곡을 연주합니다.
영화의 엔딩, 훌륭한 독주회를 마친 클라라에게 황제가 앵콜 곡을 부탁하자
그때도 클라라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합니다.
진정 감동의 순간입니다.
슈만은 일찍부터 그를 괴롭혔던 정신분열 증세와 함께
문학적인 기질도 그의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았다고 합니다.
독일남부 작센지방의 츠비카우라는 고장에서 서적상을 하면서
조그만 출판사도 경영하고 있었던 슈만의 아버지 아우구스트는
슈만이 태어났던 바로 그 해에 정신착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고 하네요.
클라라와 결혼하기 전 수많은 여인들과의 염문이 있었던 슈만이었지만
결국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 앞에서 그는 나중에는 아내만을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교향곡 1번을 작곡하고 난 결혼 이듬 해에 그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나의 다음 교향곡엔 사랑하는 아내 클라라의 이름을 붙일 것이다.
플륫과 오보에 그리고 하프로 클라라의 모습을 그려갈 작정이다."
그러나 이 <클라라 교향곡>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고,
단악장으로 된 교향적 환상곡이 스케치로 남아 있습니다.
클라라를 가장 훌륭하게 표현할 수 있는 악기란 말할것도 없이 피아노인데도
악기편성에서 피아노가 빠진 채 플륫과 오보에로 클라라를 그리기에는 무리였겠죠.
클라렌스 브라운이 그려낸 <슈만과 클라라>는 지금봐도 환상적인 동시에
관객의 내면적으로 부부애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심도를 던져줍니다.
그리고 브람스와의 삼각관계에서 오는 아련한 로멘티시즘의 향취도 느끼게 해주죠.
그는 1856년 요양소에서 4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때 그의 미망인 클라라는 37세였습니다.
DRFA에서 상영만 되면 박수가 나오는 감동적인 음악 영화입니다.
[DRFA,JONAT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