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가의 삶/문학의 향기 속으로

왕이 되고 싶었던 남자,The man who would be king,1975

by 유감독 posted Jun 2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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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휴스턴,John Huston 감독

Sean Connery...Daniel Dravot
Michael Caine...Peachy Carnehan
Christopher Plummer...Rudyard Kipling
Saeed Jaffrey...Billy Fish
Doghmi Larbi...Ootah (as Dodhmi Larbi)

4:3 full screen/color/2.1 돌비 디지틀/129분
"1976' Academy Awards, USA 각본상 포함 4개 부문 후보
1976' BAFTA Awards 촬영상,의상상 후보
1976' Golden Globes, USA 음악상 후보
1976' Valladolid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최우수작품상 후보
1976' Writers Guild of America, USA 각본상 후보"

언어/미국+영국
자막/한국
번역/DRFA,김교수





"IMDB 8.0!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키플링의 완벽한 걸작을 만나보라!"






러디어드 키플링,Joseph Rudyard Kipling,1865~1936




1907년에 영미권 최초이자 최연소의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키플링은

인도 뭄바이에서 영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인도에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오늘 소개하는 이 영화를 비롯해서 그의 문학 작품 전반에

인도의 분위기가 다분한 것이 이 때문이죠.

화가이자 학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인도 뭄바이에 있는 러호 미술관 관장을 지냈습니다.

여섯 살 때 영국으로 건너가 대학을 졸업하고,

1882년 다시 인도로 돌아왔습니다.

어린 시절에 자연스럽게 동서양 문화를 경험한 점과

당시 제국주의 문화적 수혜를 받은 점,

또 타고난 문학적 재능은 키플링의 삶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죠.

1892년에 발표한 '막사의 담시.Barrack-Room Ballads'는 그를

당대 최고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1892년에 키플링은 미국의 출판업자이자 작가인 울콧 밸러스티어의 누이 캐롤라인과 결혼했죠.

결혼 후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미국 생활에는 적응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신 그곳에서 많은 작품을 썼습니다.

키플링의 이야기에는 인도에서의 생활했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죠.

키플링의 가장 유명한 작품 <정글 북> 역시  인도의 풍경과 동물들에 대한 사랑에서 영감을 얻어 씌여졌습니다.

키플링은 나이가 들수록 모든 영국인, 더 넓게는 모든 백인이

비문명화된 미지의 원주민들에게 유럽 문명을 전파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강하게 전파하는 쪽으로 흘러갔습니다.

노벨위원회는 그를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뛰어난 관찰력과 독창적인 상상력, 기발한 착상,

이야기를 버무리는 놀라운 재능'이라고 평했죠.


오늘 소개하는 이 영화는 숀 코넬리와 마이클 케인의 불꽃 같은 연기를 목격할 수 있는

너무나 멋진 영화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키플링의 책을 옆에 끼고 잠자리에 들었다는 존 휴스턴 감독이

너무나 오랫동안 영화화 하려고 결심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1885년 인도의 신문사에서 영화는 시작되죠.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트랩 대령으로 출연했던 크리스토러 플러머가

신문사 사무실에서 특종을 건지기 위해 밤 늦게까지 일하는 기자

Rudyard Kipling(이름이 키플링이네요 ㅋㅋ)을 연기합니다.

어느 날 밤에 한 초라한 행색의 남자가 그를 찾아옵니다.

남자의 이름은 피치 카라한,Peachy Carnehan...

최근에 <조용한 미국인>에서 끝내주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마이클 케인이 연기합니다.

그는 키플링에게 자신이 알던 한 남자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겠다고 합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자신이 모시던 군대 상사 다니엘 드래보트,Daniel Dravot 입니다.

(이 영화에서 숀 코넬리의 연기는 정말이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잔상을 남기죠)


카라한과 다니엘은 인도의 깊은 오지, Kafiristan 땅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두 사람은 20개의 소총과 탄약을 가지고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이후 유럽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가상의 도시 Kafiristan으로 여행을 떠난 것이죠.

카프리스탄을 발견하기 전까지 카라한과 다니엘은 서로에게 굳게 서약합니다.

결코 술을 멀리할 것이며 특히 여자를 함부로 가까이 두지 않겠다.

그리고 두 사람은 카이버 고개 너머 북쪽으로 장대한 육로 여행을 시작합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으로 이미 오스카 촬영상을 받은 Oswald Morris에 의해 잡히는

이 육로 여행의 풍광은 정말이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장대하게 펼쳐집니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을 통과하면서 도적떼와 눈보라, 눈사태를 만나면서

마침내 미지의 땅 Kafiristan에게 다가가죠.

그리고 여행 중에 몇 년 동안 영국 원정대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구르카 병사 빌리 피쉬를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영어와 현지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빌리는 이제 앞으로 펼쳐질 두 사람의 여정에 큰 역할을 해줍니다.

Kafiristan에 도착하자 마자 원주민들은 이웃 침략자들과 전쟁을 하고 있었고

마침 다니엘 상사의 활약으로 이 침략자들을 물리치게 됩니다,

이 전쟁에서 다니엘은 적군이 쏜 화살에 심장이 뚫리지만 다니엘은 툴툴 털고 일어나죠.

이제 카프리스탄의 원주민들은 다니엘을 신으로 여깁니다.

사실은 그저 화살이 다니엘의 두꺼운 전투복을 뚫지 못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인간의 사기는 아주 사소한 데서 시작되죠.

뜻하지 않게 신으로 추앙받던 다니엘은 이 마을의 전설로 내려오던

보물 창고를 탐방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온갖 금과 은과 보석으로 가득찬 보물 창고...

이후 영화는 키플링이 늘 말했던

"가장 탐욕스러운 인간이 왕이 되려고 한다"를 증명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수많은 재화 앞에서 물욕의 시험대에 선 두 남자...

한 남자는 욕망에 처절하게 두 무릎을 꿇고 변질되어 가고

한 남자는 끝까지 순결을 지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두 남자의 갈등 구조를 우리가 아는 그런 흔하디 흔한 클리세로 끌어가지 않습니다.

영화는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왕이 되려는> 인간 그 심연 깊은 곳으로 우리를 끌어 당깁니다.









두 남자가 찾아갔던 도시 Kafiristan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Nuristan Province와 Chitral의 일부라고 합니다.

마이클 케인과 숀 코넬리는 자신들의 연기 인생 중 최악의 촬영 환경이었다고 토로했죠.

촬영장에는 심지어 앉을 의자도 없었다고 합니다.

존 휴스턴은 키플링의 이 원작을 영화화 하기 위해 수도 없이 시도했었다고 하네요.

1950년 구상 시에는 클락크 케이블과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 후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험프리 보가트가 세상을 떠나고 곧 이어 클락크 케이블 마저 세상을 떠나버리자

영화 프로젝트 마저 무산되었다고 하네요.

험프리 보가트의 아들  Stephen H. Bogart가 쓴 <나의 아버지 보카트>를 읽어보면

험프리 보가트는 죽기 전에 이 영화를 굉장히 하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나자 존 휴스톤은 이번에는 버트 랭카스터와 커크 더글라스를 캐스팅 해서

다시 찍으려고 했다네요.

하지만 이 두 사람 마저 험난한 촬영이 이제는 무리라고 판단을 내리자

이번에는 로버트 레드포드와 폴 뉴먼을 캐스팅 하려 했습니다.

이때 폴 뉴먼이 존 휴스톤에게 이 영화는 우리 보다 마이클 케인과 숀 코넬리가 적격이다라고

권유했고 존 휴스톤은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라며 박수를 쳤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제사상 카푸 셀림 역을 연기한 Karroom Ben은 당시 나이 130세로

원래 그 지역의 올리브 과수원의 과수원지기였다고 하네요.

캐스팅이 된 후 촬영장에서 계속 졸기에 존 휴스톤이 달러 뭉치를 보여주면서

"이젠 촬영에만 집중하시오, 더 이상 밤에 과수원을 지키지 말고요"

라고 했다고 합니다.

영화가 개봉된 후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Karroom Ben은

만세를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네요!


"나는 이제부터 영원히 존재한다(불멸이다)!"


참 감동적인 일화네요.


이 영화는 숀 코넬리가 <내 인생의 영화>라고 원픽했습니다.


1994년 Inside Actors Studio에 출연한 마이클 케인은 이 영화에 참여할 당시

존 휴스톤 감독과의 트러블에 대해서 소회한 적이 있죠.

너무나 영화에 대한 설명이 없던 존 휴스톤에게 마이클 케인이 찾아가서

배우에게 너무 영화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며 따졌떠니

그때 존 휴스톤이 이렇게 말했다네요.


"당신이 이 영화에 출연하면서 받는 돈을 생각해 보게나,

그 정도로 받으면서 영화에 대한 해석을 누구에게 요구하느냐, 당신 스스로 연구하고 만들어 내어라"


엄청난 카리스마로군요.

촬영이 시작되고도 록산느,Roxanne 배역을 캐스팅 하지 못했을 때

존 휴스톤은 스탭 파티장에서 보게 된 마이클 케인의 아내 샤키라 케인을 계속 응시했죠.

그리고 즉석에서 그녀를 록산느 역으로 캐스팅했습니다.

이 영화는 그해 엄청난 흥행 수익을 올려 숀 코넬리와 마이클 케인이 인센티브를 달라며

Allied Artists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소송 결과는 두 사람의 승리,

두 사람은 각각 2만 5천 달러의 인센티브를 받아냅니다.


존 휴스톤은 극중 키플링 역을 연기한 크리스토퍼 플러머를 일찌감치 해고하려고 했지만

숀 코넬리가 만약 플러머를 해고하면 자신도 하지 않겠다고 해서 남게 되었답니다.

정말 멋진 의리의 사나이네요.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 사건을 두고

'존 휴스톤은 처음부터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리차드 버튼을 고집했고

숀 코넬리는 나를 고집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극 중 두 사람이 엄청 싸우고 헤어지려는 장면에서 보이는 뒤의 벽화는

무려 기원전 1500년 전의 그림으로 그리스 산토리니 섬에서 발굴되었던

<봄>이라는 프레스코를 존 휴스톤이 빡빡 우겨서

미술팀들이 그대로 재현해낸 것이라고 하네요.

마이클 케인은 자신의 전기에서 존 휴스톤이 촬영장에서 자신과 숀 코넬리를

오로지 극중의 이름으로만 불렀다고 합니다.


이 영화를 상영할 3월 즈음에는 어느새 우리의 새로운 대통령이 선택되어져 있겠네요.

어제 TV 4자 토론을 보면서

우리는 여전히 키플링이 낸 수수께끼의 정답을 찾아 헤맵니다,


"가장 탐욕스러운 사람이 왕이 되려고 하지만

그래도 그 중에는 조금 덜 탐욕스러운 사람이 있다.

그리고 재수 좋으면, 혹은 하나님이 보우하시면

우리는 그마나 국민을 생각하고 국민을 더 나은 정직한 세상으로 인도하려는

왕을 만날 수 있다"


이 영화를 놓치는 당신은 진정 불행한 사람입니다.



[DRFA,JONAT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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