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 성장 영화

바운스,Baunsu ko gaurusu,..aka Leaving,1997

by 유감독 posted Jun 22,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하라다 마사토,原田眞人,Harada Masato 감독

Hitomi Sato ....  Jonko
Yasue Sato ....  Raku
Yukiko Okamoto ....  Lisa
Jun Murakami ....  Sap

1.35:1 letter box screen/color/2.1 돌비 DTS/109분
"1998' Blue Ribbon Awards 최우수작품상,감독상,신인여우상
1998' Japanese Professional Movie Awards 신인여우상
1998' Kinema Junpo Awards 신인여우상
1998' Yokohama Film Festival 각본상,촬영상,신인여우상"

언어/일본
자막/한국
번역/DRFA,조한우




"왜 그토록 오랫동안 이 영화가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일까?"



20년 전에 삼성동 메가박스 죽돌이였던 시절이 있었죠.

표끊는 입구에서 정말 정말 볼 영화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영화가

바로 이 영화였죠.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메가박스의 가장 귀퉁이에

주로 인디 영화만 상영하는 정말 작은 극장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나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아주 오랫동안 스크린을 응시했더랬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근에 네이버 서핑을 하다보니

이 영화에 대해 나와 같은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더군요.

아래의 소회는 그때 내가 영화를 보고 와서 바로

나의 홈페이지에 적었던 글입니다.

그러고 보니 DRFA 홈피는 인터넷이 익스플로러가 시작되고

바로 만들어진 유서 깊은 홈피로군요.

제로보드4에서 무려 XE 엔진까지 무사히 살아남은

지독히도 명이 질긴 홈피로군요.

제로보드4 홈피 속에는 젊은 날 나만의 리뷰들이 그야 말로 가득하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바운스>를 그때 그 감정 그대로 들려드리죠.




"히라다 마사토 감독의 ‘바운스’는 절망적이다 못해

사람을 기절시킬 정도로 현재 일본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말로만 듣던 일본 청소년들의 원조교제의 실상을

갈데까지 다간 카메라 워크로

마치 다큐 찍듯이 찍어나간다.

(오해하지 마라, 야한 장면 1도 안나오니까!)


흰 양말과 짧은 교복 치마로 대변되는

영화 속 고교생들은 스스로가

"이제 우리 고삐리들은 퇴물이야~

중딩들의 시대가 오고 있어"라고 말하며

자신들을 더 가빠른 벼랑으로 내어몰고 있다.

그럴듯한 섹스씬이 없이도 이처럼 인간의 성욕에 대해

전율을 일으키게 만드는 비법은

아마도 감독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의

철저한 고증에 있지 않나 싶다.

감독의 노트에 적힌 그녀들에게 있어 원조교제는 일종의 비지니스이다.

핸드폰과 연락책을 구비하고

그녀들은 그 날 그 날의 매춘 스케줄을 짠다.  

그렇게 번 돈으로는 쉽게 명품을 산다.

구찌와 페라가모 가방을 위해서는

쉽게 아저씨들과 여관으로 직행한다.

반면 그녀들의 의식은 섬뜩할 정도로 곧게 서있다.


"돈 줄 테니 하자는 어른이 문제인가,

아니면 돈 때문에 하자는 짓 다 하는 아이들이 문제인가”


라는 논제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 그녀들은

늙은 교수 고객이 들려주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 날은 낙태를 하기 위해 수술대 위에 오른다.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희망없는 일본의 미래?

아니면 단순한 원조 교제에 관한 ‘보고서’ 정도?

영화가 이 모든 구태의연을 뛰어넘는 것은 캐릭터들의

끈끈하게 얼킨 우정에 집요하게

감독은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고갸르와 순수한 젊음의 열정을 표상하는

리사의 우정은 눈물겹기 까지 하다.

수개월간 편의점에서 일해 번 돈으로

뉴욕행 항공권을 마련한 리사는

비행기 출발 24시간을 남겨두고 도쿄에 처음 발을 디딘다.

그러나 낯선 이들에게 돈을 모두 뺏기고 만다.

그때 우연히 만나게 된 고갸르 존코(사토 히토미)와

라쿠(사토 야스에)는 리사를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선다.

밤거리를 헤매는 이 셋은

습관처럼 가슴 아픈 대사를 뱉어낸다.


“우리의 고객층인 아저씨들은 젊었을 땐 시험 공부와 자위만 하다가

나이 들어 뒤늦게 재미보려는 고독에 찌든 꼰대들이다,

그들을 위로해주는 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이들의 말은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일그러진

가부장들의 초상을 적나라하게 발가벗기고 있다.

일본은, 정말 일본에는

희망이란 것이 있을까?

하긴 자본주의란 게 다 그렇겠지만...

이토록 수많은 상념에 잠기게 만든 영화는 참 또

얼마만인지..."



그때 나는 이 영화가 너무 좋아서

당시에 하라다 마사토 감독의 인터뷰를 있는대로 찾아서 모으기도 했죠.

아래는 하라다 마사토 감독이 <미드나잇 아이>紙와의 인터뷰 내용인데

그의 의식을 조금 들여다볼 수 있는 진기한 자료입니다.

제가 직접 번역해놓은 것인데 한번 읽어보세요.

아니나 다를까 독한 영화광이었네요!









하라다 마사토 감독은 일본 영화감독 중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여러 해 동안 살고, 공부하고, 일해 온 그는 먼 곳에서 그의 조국과 그 사회를 관찰할 수 있고 그것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모두 인식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영화 <바운스,1997>는 그런 그의 조국에 관한 사회적 비판의 강력한 표현이었다.

당신의 최근 영화 이누가미는 올해 베를린에서 경쟁하는데, 그곳에서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이 리마스터 버전으로 상영되고 있다. 당신은 2001년 혹은 다른 큐브릭 영화의 팬인가?

난 한 때 스탠리 큐브릭과 일한 적이 있다, 풀 메탈 재킷의 일본어 더빙 버전을 만들고 싶어 번역 작업을 하려고 스탠리와 하루에 한 시간 정도 계속 통화를 했다. 총 30시간 이상...



당신은 내가 아는 일본에서 가장 할리우드에서 주목받는 감독이다, 미국 영화에 대한 그 매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내 스타일은 "할리우드 독불장군" 같은 스타일이다, 헐리우드는 평범하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일본 감독들과는 다르게 나는 커버리지 샷을 많이 사용한다. 영화 <바운스>에서 내가 추구했던 것은 존 카사베츠 스타일의 연기와 켄 로치 스타일의 즉흥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연출을 조합하고 싶었다.



하워드 혹스가 멘토라는데 사실인가?

정말이다, 하워드 혹스가 나의 멘토이다. 내가 17살이나 18살에 영화 제작자가 되고 싶었을 때, 60년대 후반이나 70년대 초반에는 일본에서 영화 제작자가 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래서 해외에서 영화를 공부하기로 결정했고, 1972년에 저는 런던에서 영어를 공부했다. 그리고 하워드 혹스의 1939년 영화 <천사만이 날개가 있다>를 보고 나는 앞으로 내가 그려나갈 영화의 세계를 확정지었다. 그리고 그 해에 운이 좋게도 같은 반 친구들 중에 월터라는 스위스의 유망한 영화 평론가가 있었는데 그와 나는 공통점이 많았다. 우리는 함께 영화를 봤고, 그리고 토론했다.  "만약 당신이 여름에 영화제에 가고 싶다면, 나는 당신에게 기자증을 줄 수 있다" 그 당시 베를린 영화제는 7월에 여름에 열렸고, 그래서 우리는 함께 베를린으로 여행을 갔다. 그 해는 Pier Paolo Pasolini가 황금곰상을 수상한 해였고, 나는 폐막식에 참석했다. 그때 나는 언젠가는 나의 영화를 가지고 베를린에 다시 오리라 결샘했는데 <이누가미>로 그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영화제 기간 동안,하워드 혹스가 세바스티안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초청되었다는 새로운 정보를 입수했고 나는 다시 그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나는 정말 한 축제에서 다른 축제로 여행하는 젊은 영화광 같았다.그리고 그곳에서 저는 하워드 혹스를 처음 만났고, 우리의 관계는 다음 해에도 계속되었다. 이후 나는 로스엔젤레스로 이사를 가서 팜스프링스에 있는 혹스의 집으로 찾아가 5~6시간 동안 그를 인터뷰하면서 그에게 수많은 것을 질문했다.  난 아직도 그때의 인터뷰 테이프를 갖고 있다. 그리고 차츰 나는 하워드 혹스가 나의 아버지처럼 여겨졌다. 내게 내 인생의 영화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혹스의 <붉은 강>이다. 그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은 이 세상에서 일종의 동반자이며 동시에 마지막 내가 무엇이 되느냐에 관한 종착지이기 때문이다.


<바운스>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영화는 무엇인가?

<바운스>에서 흔들리는 카메라 워킹은 옛날 러시아 영화들처럼, 과장된 감정의 카메라의 움직임을 가진 동시에 현실적인 설정을 사용하려 했다. 예를 들면 미하일 칼라토조프가 이것을 꽤 잘했다. 그의 영화 소이 쿠바(I Am Cuba,1964)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 아마 내가 13살인가 14살 때, 그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되었다. 그리고 나서 완전히 잊고 살았는데 뉴욕에서 마틴 스코세지를 만났을 때, 우리는 몇 편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그때 스콜세지가 내게 소이 쿠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언급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지금 본다면, 당신은 훨씬 더 감명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다시 소이 쿠바의 비디오를 사서 봤는데 정말 환상적이었다.   와이어 샷을 사용한 긴 촬영과 많은 흥미로운 크레인과 같은 것들로 말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눈에 띄기 때문에, 나는 그런 이미지들을 나의 영화에  조금 빌리고 싶었다. 그의 이전 영화 <학이 날고 있다>를 보라, 1957년에 만들어졌지만 여주인공이 연인을 태운 기차 앞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하는 감정적인 장면이 있다. 멋진 사진, 흥미로운 카메라 움직임, 그리고 모든 것이 그 속에 다 있다.  나는 그것을 <바운스>에 가져오고 싶었다.





[DRFA,JONATHAN]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