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사람들

소크라테스,Socrate,1971

by 유감독 posted Jun 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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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로셀리니,Roberto Rossellini 감독

Jean Sylvère        ...        Socrate
Anne Caprile        ...        Santippe (as Anna Caprile)
Giuseppe Mannajuolo        ...        Apollodoro (as Bepy Mannaiuolo)
Ricardo Palacios        ...        Critone
Elio Seraffini        ...        Prete

4:3 full screen/Color/2.0 디지틀 모노/120 min (Buenos Aires Festival Internacional de Cine Independiente)
언어/ Italy+Spain+France
자막/한국
번역/DRFA,조학제






"잉그리드 버그만이 빠졌던 남자, 로셀리니가 도전하는 소크라테스의 생애"





(소크라테스, Socrates,BC 470~ BC 399)




유명한 아테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생애 중에서 특히 말기를 집중적으로 다룬 영화입니다.

사람이 마지막을 향해 갈 때 어떤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지를

로셀리니가 박진감 넘치게 풀어나갑니다.

영화의 역사적 배경은 그리스 폴리스와 아테네 민주주의가 쇠퇴한 시기이죠.

영화의 시작은 기원전 404년, 현재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승전국이 된 스파르타인들이

도시의 성벽을 파괴하고 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도시는 패배와 굴욕, 그리고 해방을 위한 군사적 반격으로 온통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당시 70세의 소크라테스는

매일 같이 수많은 젊은이들과 함께 인간의 삶과 철학을 탐구합니다.

에우티프론의 공화론, 크리토와  파이도를 비롯한

플라톤의 주옥 같은 대화들이 영화 내내 환상적으로 펼쳐집니다.


소크라테스를 비방하는 반대측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에 대한 명시>로 소크라테스를 공격하죠.

이에 소크라테스는 <불의한 원인조차 항상 정당화할 수 있다>는 궤변과

수사학의 전문가 다운 명언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킵니다.

철학적 탐구를 위한 수단으로 <대화>를 사용하는 소크라테스의 방법이

얼마나 선구적으로 앞서갔는지를

여러분들은 목격하시게 될 것입니다.

대화 그 자체의 순간에서 불꽃을 발하는 아이러니와 계략의 미학,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미덕의 중요성,

돈과 권력, 물질적 가치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경멸 등이

참으로 황홀하게 펼쳐지는 멋진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잉그리드 버그만이 빠질만한 석학 감독님이 분명하더군요.

영화의 엔딩 강제로 독극물을 마신 소크라테스가 죽어가는 순간에도

삶과 죽음, 영혼의 불멸에 대해 친구들에게 한 마디라도 더 들려주려는

소크라테스를 보면서

우리는 너무나 안일하게 세상을 탐구하다 가는구나 라는

뼈아픈 반성을 하게 되더군요.

정말 멋진 영화였습니다,









시대를 흔들었던 위대한 여자가 어떤 남자에게 빠져들어갈 때는

그 어떤 연유로 빠져들게 되는 것일까요?

1948년 뉴욕의 맨해튼.

잉그리드 버그만은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파이잔>을 보기 위해 텅 빈 극장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이미 2년 전 로셀리니의 네오리얼리즘의 걸작 <무방비 도시>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로셀리니의 대부분의 작품들을 다 찾아보았죠.

<무방비 도시>의 단순하고도 강렬한 리얼리즘 색채에 매료된 버그만은

<파이잔>을 본 후, 로셀리니에게 편지를 썼죠.


“만약 당신이 영어를 매우 잘하는,

이탈리아어는 그저 ‘사랑해 ti amo’ 밖에 모르는 스웨덴 여배우가 필요하다면,

나는 언제든 그곳으로 가서 당신과 영화를 찍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로셀리니는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버그만의 명성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버그만은 <가스등>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후

알프레드 히치콕의 <스펠바운드>와 <오명>, 레오 맥커리의 <성 메리의 종>,

빅터 플레밍의 <잔다르크> 등에 출연하며 할리우드 여신으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던 때죠. 

동료들은 로셀리니에게 버그만의 명성에 대해 넌지시 일러주었지만

그는 할리우드 대스타가 자신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로셀리니는 버그만이 자신의 영화에 출연하겠다는 의지를 영화에 대한

재정적 투자의 의미로 받아들였죠.

결국 버그만이 로셀리니의 신작에 출연하기로 하자

전설적인 미디어 재벌인 하워드 휴즈가 제작자로 나섰습니다.

휴즈는 에바 가드너를 비롯한 여러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렸으며

버그만에게도 반한 상태였죠.

이 위험한 사랑은 처음부터 폭탄을 안고 시작되었죠.

특히 버그만이 빼앗은 로셀리니는 유럽 영화계의 대선배 Anna Magnani 이죠.

자신 역시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로서 버그만은

왜 그다지도 무모한 사랑을 시작하였을까요?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버그만은 함께 한 첫 영화 <스트롬볼리>를 촬영하는 동안 두 사람은 아이를 가졌다)




두 사람이 함께한 첫 영화 <스트롬볼리>를 촬영하는 동안

두 사람은 이미 아이를 가지게 됩니다.

엄격한 청교도적 윤리가 팽배했던 미국에서는 맹비난이 쏟아졌죠.

국회의원과 종교 지도자, 시민 단체를 비롯한

전 미국 사회가 들고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스트롬볼리>는 유럽에서 대성공을 거둬드립니다.

<스트롬볼리>의 비관습적이고 비선형적인 내러티브는

버그만 팬들의 기호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지만

결국 버그만이 그토록 헐리우드 영화에서 찾지 못했던

여배우로서의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데는

결정적인 필모가 되고 맙니다.

로셀리니는 자신의 아내이자 영감의 원천인 버그만을 데리고

<유로파 51>, <이탈리아 여행>, <공포> 등의 영화를 차례로 완성해갔지만

수많은 영화 동지들로부터 네오 리얼리즘을 차디차게 배반한

배반자로 낙인 찍혔습니다.

잇따른 상업적 실패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은 버그만을 지치게 만들었고

결국 버그만은 로셀리니를 떠나

1956년 장 르누아르의 <엘레나와 남자들>을 찍은 후 다시 할리우드로 돌아갑니다.

로셀리니의 예술적 단물을 제대로 흡수한 버그만은

헐리우드 복귀작 <추상>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무서운 성숙의 연기를 보여줌으로서 단번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꿰어 찹니다.  








한편, 버그만과 헤어진 후 훌쩍 인도로 여행을 떠났던 로셀리니는

이후 험난한 영화인생의 길을 걷게 됩니다.

아무도 자신의 영화에 투자를 해주질 않자

"다시 처음부터" 라는 결단을 내어걸고

이상하리 만큼 자신보다 앞서간 시대의 명인들을 소박하게 조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탄생한 영화들이 바로 <파스칼>과 <소크라테스>, <갈릴레오> 등의

걸작 들입니다.

대륙을 횡단한 이 세기의 연인들은 이후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지만

서로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을 잊지 않았습니다.

버그만은 노년에 잉마르 베르히만의 <가을 소나타>에 출연한 뒤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죠.


“<무방비 도시>를 본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로셀리니와 사랑에 빠졌다.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결코 난 헐리우드의 그저 그런 여배우로 머물었을 것이다.

로셀리니는 내 일과 인생,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았다"


잉그리드 버그만을 떠나보낸 후

홀로 쓸쓸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만들었던 심기일전의 영화,

<소크라테스>를 조학제 제독님의 번역으로

만나보겠습니다.

이번에도 또 느낀 거지만

허작가와 전 이구동성으로 제독님은 역시

위인들의 삶을 조명하는 번역에 이써 발군의 실력을 보인다는데

동의했습니다.



[DRFA,JONAT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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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해 프로그램을 준비하라,

관객은 반드시 알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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