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구띠에레즈 아레아,Tomás Gutiérrez Alea 감독
Salvador Wood .... Nephew
Silvia Planas .... Aunt
Manuel Estanillo .... Bureaucrat
Omar Alfonso .... Cojimar
Tania Alvarado
Pedro Pablo Astorga
16:9 screen/흑백/Mono/85분
"1966' Karlovy Vary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최우수작품상 후보,심사위원 특별상"
언어/Cuba
자막/한국
번역/DRFA,애니
"<조나단 유, 내 인생의 영화 46위>,<관타나메라>의 거장,토마스 구띠에레즈 아레아가 다시 우리 배꼽을 빼놓기 위해 돌아온다!"
(토마스 구띠에레즈 아레아,Tomás Gutiérrez Alea,1928~1996)
조나단 유가 너무도 사랑하는 쿠바의 감독입니다.
분명한 것은 1세기에 하나 태어날까 말까한 천재 감독입니다.
조나단 유는 그의 전작을 번역, 한국 관객에게 소개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죠,
이번에 소개하는 <어느 관료의...>의 애니님 번역과 함께
그의 작품 대부분의 번역이 끝나가네요.
토마스 구띠에레즈 아레아는 1928년 쿠바 하바나에서 태어났습니다.
중산층의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10대에 마르크스 사상을 접하고 청년 공산당에 가담하죠.
1952년에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을 떠나 영화를 공부
2년 뒤 바티스타 정권의 억압이 횡행하고 있던 쿠바로 다시 돌아와
사파타 광부들의 이야기를 다룬 16밀리 중편영화 <엘 메가노,1955>를 만듭니다.
그는 카스트로의 혁명 운동에 적극 동참하면서 첫 장편 영화
'혁명의 역사 3부작'을 만듭니다.
하지만 자신이 꿈꾸었던 쿠바가 사회주의와 만나면서
결국 쿠바의 모든 예술가들이 하나 둘 쿠바를 버리고 서방으로 망명하는 것을 지켜보며
마르크스 사상에 젖었던 자신의 삶을 뼈저리게 반성하는 영화를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입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자신의 몸에 암세포가 번져가던 1993년에 찍은 <딸기와 초콜렛>,
화가이자 시적으로 문학의 정점에 올라와 있는 한 예술가가
자신의 동성애 성향으로 인해
폐쇄된 공산주의 이념 속에서 좌절해 가는 과정을
섬세한 쿠바의 색채와 미학으로 버무러낸 걸작입니다.
그리고 2년 뒤 쿠바의 진주 '호세 마르티'의 시에 붙인
아름다운 노래의 제목이자
미군에게 강점당한 식민의 땅인 ‘관타나모’의 여인이란 뜻을 갖고 있기도 한
<관타나메라>를 유작으로 남긴 채
영면에 들었습니다.
DRFA관객분들을 열광하게 한 관타나메라는
자신이 미친 듯이 신봉했던 막시즘에 대한 뼈저린 참회를 그린
어쩌면 그의 고해성사와도 같은 영화입니다.
아직도 가끔 그가 만든 30분짜리 단편 <이별>을 떠올리면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맴돌곤 하죠,
자, 이번에는 그의 작품 중, 무려 IMDB 평점 7.4를 기록하며
구띠에레즈 아레아 감독으로 하여금 쿠바 정부의 가시가 되게 만들었던
완벽한 블랙 코메디 한 편을 감상하시죠.
쿠바를 여행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동상입니다.
쿠바 아바나의 혁명 광장 옆에 있는 호세 마르티의 모습이죠,
쿠바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호세 마르티는 '증오를 지워버린 투사'라는 평을 들으며
지금도 쿠바 국민이 사랑하는 투사 1위를 기록하는 혁명가입니다.
와, 살떨리네요...
바로 이런 쿠바 국민의 정신적 기둥인 호세 마르티를 건드리다뇨...
아마도 토마스 구띠에레즈 아레아가 약을 먹지 않고는 불가능한 시도 아니었을까요?
Salvador Wood가 연기하는 이 영화의 주인공 <조카>가...
(희한하게 영화 내내 주인공의 이름은 조카로만 불리어집니다)
삼촌의 장례식장을 흐뭇하게 쳐다보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왜냐면 죽은 삼촌이 바로 <호세 마르티의 흉상>을 자동으로 찍어내는
기계를 발명했었거든요,
삼촌의 장례식장에는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들었고
정부에서는 그를 (우리 식으로 하면 국립 묘지) 최고의 명당 자리에
묘자리를 내어주면서 성대한 장례식을 치뤄줍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만 장례식에서 동네 최고 노동 당원이
삼촌의 뜻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삼촌의 <노동당원증>을 같이 묻어주자고 제안을 하죠,
조카는 좋은 취지라며 박수를 치고 마침내 삼촌의 관속에 노동당원증을 묻으면서
장례식은 끝이 납니다.
하지만 다음 날,
조카는 숙모를 모시고 삼촌의 연금을 신청하기 위해 시청 연금과를 찾게 되죠.
그런데 담당자는 가장 먼저 삼촌의 당원증을 보자고 합니다.
조카는 장례식장에서 모든 사람의 동의 아래 당원증을 삼촌의 관속에 묻었다고 하자
담장자는 자신의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법규를 바꾸면서까지 연금을 줄 수 없다고 합니다.
결국 조카는 국립묘지로 가서 무덤을 파헤쳐야 한다고 하자
공원 관리인은 정부의 <발굴 승인서>가 있어야 한다고 하죠,
아무리 애원해도 공원 관리인은 눈도 깜짝하지 않습니다,
조카는 다시 시청으로 가서 <무덤발굴 승인서>를 신청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 까다롭습니다.
숙모를 너무나 사랑하는 조카는 결국 야밤에 몰래 인부들을 데리고 가서
삼촌의 무덤을 파헤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원 관리인에게 발각되고
조카는 급한 김에 삼촌의 관을 숙모의 집으로 가지고 오죠,
다음 날, 조카는 국립묘지로 가서 삼촌을 다시 매장하고 싶다고 하자
묘지측은 이번에는 <매장 승인서>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조카는 다시 시청으로 가서 <매장 승인서>를 신청하자,
담당자는 먼저 <발굴 승인서>를 달라고 합니다,.
조카는 미칠 지경입니다.
왜냐면 삼촌의 시체가 급속도로 부패가 진행되기 때문이죠.
매일 엄청난 얼음으로 삼촌의 시체를 덮던 조카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실제로도 조금씩 미쳐갑니다.
토마스 구띠에레즈 아레아는 이탈리아 유학 시절에
로셀리니의 초기 영화에 굉장한 감흥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긴 잉그리드 버그만은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를 보고
바로 짐을 싸서 이탈리아로 넘어갔으니까요...
비교적 초기 영화에 속하는 이 영화는 혁명 이후 처음으로
토마스 구띠에레즈 아레아를 세계에 알리게 된 작품입니다.
관료주의에 물든 쿠바 관료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그는
지식인적 시각의 한계를 지닌 영화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쿠바 혁명의 주체로서, 또 쿠바 사회 내의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관료주의에 물들어가는 쿠바 사회에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이죠.
초기작 <어느 관료의 죽음>부터 유작 <관타나메라>에 이르기까지
구띠에레즈 아레아 일관되게 비판하였던 것은 바로 관료주의입니다,
인간미 없는 사회주의가 빠질 수 있는 어떤 타성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의 목소리를 낸 것이죠.
<어느 관료의 죽음>은 카스트로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쿠바에서 상영 금지를 당하는 수난을 당했지만,
1966년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면서
그를 세상에 알리는 교두보를 마련해준 소중한 필모로 자리 잡습니다.
토마스 구띠에레즈 아레아는 2년 뒤 마침내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드는 자신의 대표작을 만들게 되는데
바로 <저개발의 기억>이죠.
모두가 카스트로 정권을 피해 서방으로 도망가버린 텅 빈 아바나의 도시 한 가운데서
하루 하루를 휴가처럼 살아가는 어느 지식인의 일상을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몽타쥬 기법을 사용해서 찍어낸 걸작이죠.
어떠신가요?
2021년 여름, 토마스 구띠에레즈 아레아의 전작에 빠지실 준비가 되셨나요?
[DRFA,JONAT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