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그라니에-데페르,Pierre Granier-Deferre 감독
Jean Gabin .... Julien Bouin
Simone Signoret .... Clémence Bouin
Annie Cordy .... Nelly
Jacques Rispal .... Le docteur/Doctor
Nicole Desailly .... L'infirmière/Nurse
Harry-Max .... Le retraité
André Rouyer .... Le délégué
4:3 full screen/color/2.0 모노/86분
"1971' Berli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남우주연상,여우주연상 수상"
언어/France+Italy
자막/한국
번역/DRFA,애니
"최불암과 김혜자가 무대 위에 올리면 끝내줄 실내극"
(조르주 심농,Georges Simenon,1903~1989)
조르주 심농 혹은 조르주 시므농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가 무려 400여편의 소설을 쓴 무서운 필력의 벨기에 작가라는 것을 빠트릴 수 없다.
한 달 내내 매일 포도주 두 병씩 마시고 한달에 체중 1킬로그램을 상실하며
미친듯이 책을 쓴 작가로 유명하다.
그렇게 탄생된 매그레 탐정 이야기는 초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매그레 서장 시리즈는 방송으로 영화로 끊임없이 재탄생하였다.
그렇게 추리 소설에 몰두하던 심농이 아주 독특한 소설 한 편을 썼는데
그것을 프랑스의 악동 누벨바그 거장, 피에르 그라니에-데페르 감독의 손에 들어갔다.
인간 심리에 관한 편집광적 작가와 그보다 더 인생을 조롱하는데 도가 튼 감독의 만남,
거기에다 프랑스의 국민 배우, 장 가방과 시몬느 시뇨레의 만남...
이래저래 촬영전부터 평단과 언론의 집중 시선을 받던 이 작품은
개봉과 동시에 베를린 영화제에서 아주 드물게 남자 배우와 여자 배우가 동시에
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어내었다.
영화는 인생에 대한 집요한 매스와 집게의 요동침으로 가득차 있는
고약하기 그지없는 <부부>에 관한 보고서이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 하랴>에서부터
부부에 관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심농이 그려낸 <고양이를 키우는 여인>에서의 부부는
좀 더 고독하고 좀 더 고립적이고 좀 더 잔인하다.
집을 잘못 사서 시로부터 강제철거가 한참 진행중인 동네 한 가운데의 커다란 집에
중년과 노년의 문턱에 걸려 있는 두 부부가 살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언제부터 언어가 사라졌는지는 영화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피에르 그라니에-데페르의 모든 영화가 그러하듯 이 영화 역시불친절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피에르 그라니에-데페르 영화에 끌려들어간다.
거장은 미주알 고주알 설파하지 않고서도 인생의 중요한 핵심 한 방을 관객의 마음 속에 심어준다.
부부가 사는 집에는 식탁도 두 개이다.
침대도 두 개, 모든 것이 두 개이다.
두 사람은 한 공간을 고집하지만 '함께'는 절대로 불가한다.
중요한 대화는 꼭 한 공간 안에서 '쪽지'로 해결한다.
여자는 가끔 빛바랜 사진 속의 자신의 모습을 본다.
서커스 단에서 잘나가던 묘기 부리던 여자가 자신의 모습이다.
환호하던 관중들과 찬란한 스폿라이트가 햇살처럼 쏟아지던 청춘의 한 때,
하지만 지금은 대화할 상대가 아무도 없다.
그나마 이어지던 대화는 어느 날 남편이 길고양이 한 마리를 가지고 들어오면서부터
완전히 끊어지고 만다.
남편은 잠을 잘 때도 고양이를 끼고 잔다.
점점 그 고양이에 대한 질투가 여자를 한없이 괴롭힌다.
그리고 마침내 고양이를 살해하기로 결심하고 여자는 우발적으로 그 결심을 행동으로 옮긴다.
조르주 심농은 그의 연작 소설 매그레 시리즈에서 '균열이론’을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모든 악당의 내부에는 ‘인간’이 존재하며,
그들을 단순한 ‘게임 상대’로 보는 대신, 잠시 벌어지는 틈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해 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그의 균열이론은 <고양이를 키우는 여인>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두 부부의 결혼생활은 얼음이 깨어지듯 심하게 균열이 나버렸지만
심농은 그 균열 사이의 남아 있는 애정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고양이를 죽인 아내를 저주하고 또 저주하면서 집을 나간 남편은
단 한순간도 아내를 마음에서 지우지를 못한다.
쇼윈도에서 비치는 인파 들 속에서 아내의 흐릿한 모습을 찾아내고는 남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렇듯 영화 내내 두 부부의 증오와 떨림과 애착을
거장 피에르 그라니에-데페르 감독은
회화적인 몽타쥬와 시각적인 편집의 흐름으로 유려하게 잡아나간다.
강제 철거반에 의해 뜯겨져 나가는 집들을 고속 촬영으로 교차 편집해 나가는 대목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부부들의 관계가 타의에 의해 조금씩 파괴되어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무척이나 씁쓸하다.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왜 저렇게 살아?' 하면서 조롱하겠지만
그 순간 관객은 감독의 미끼를 문 것이다.
이 영화는 '왜 저렇게 살아?'라는 관객의 질문을 받아내어야만 그 빛을 발할 수 있는
태생적인 색깔을 가진 영화이다.
'왜 저렇게 살아?'라는 질문 앞에서
부부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강한 운명론적 고리에 묶여 있다는 지루한 해답을
이 영화는 우리에게 던져준다.
영화의 엔딩 남편의 선택이 보여주는 충격적인 결말은 그 운명론이
우리가 생각하는 표피적인 운명론보다 훨씬 더 무섭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장 가방과 시몬느 시뇨레가 보여주는 명불허전의 연기는
배우는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가르쳐주면서
우리가 왜 이런 예술영화를 보아야 하는지도 답해준다.
[DRFA,JONATHAN]